{Photo} 03.21 "韓國雜誌 Bazaar" 4 月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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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hoto] 20140321 'Bazaar' 4월호...



       우리가
             모르는
       안재욱
익숙한 얼굴의 안재욱은 사실 낯선 속내의 소유자였다.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선택한 배우.
시간과 사건이 쌓이고 쌓여 드디어 드러난,
쉽게 볼 수 없는 안재욱의 진짜 표정을 보았다.    에디터/권민지
Photographed by Shin Chaeyoung










또 다른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때로는 잊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다음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지않을까 싶다.
의도적으로 내 모습을 숨기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식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많은 활동을 하지않는 것이 나의 선택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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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Content in Korean

문자중계 1
안재욱은 20세기의 ‘오빠’였다. 지금 ‘도메니저’를 외쳐대는 것처럼 초등학교 시절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강민 오빠’의 ‘포에버’를 흥얼거리곤했다.
오죽하면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결말이 바뀔 정도였으니, 본래 남자 주인공이었던 준희(차인표)를 밀어내고 애절한 눈빛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 남자의 사랑은 전 국민의 축복 속에 해피엔딩을 맞았다.
드라마와 뮤지컬, 가수까지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 드라마를 알리고 이어서 노래까지 히트시키는 지금 한류의 수순을 가장 먼저 밟은 것도 안재욱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안재욱은 잠잠 했다.
생각해보면 <해바라기>의 냉정한 외과의사, <천생연분>의 장난기 넘치는 연하남, <오! 필승 봉순영>의 순수한 백수건달등 드라마 속 안재욱은 익숙하지만 진짜 안재욱의 모습은 오리무중이다 .
“앞으로 3년간 만날 수 없는 분이니 센 질문만 던지겠다. ”는 <라디오 스타> MC의 선언이 말하듯, 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안재욱은 긴 머리를 어깨 밑으로 늘어트린 채 촬영장에 나타났다.
오는 4월부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태양왕>의 루이 14세 역할을 위해서다 .
“내가 가진 실력이 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어요. 대신 뒷 담화 하는 걸 좋아했죠. (웃음)”
그는 인터뷰 내내 농담을 섞어가며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대중의 관심을 즐기기보다는 시선 밖으로 숨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추억 속 만인의 연인이아니라 현실에서 오래도록 존재하기 위한 그만의 생존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의 촬엉일 텐데 자연스러워 보인다. 카페와 스뉴디오를 오가고 요구사항이 많았는데도 할 말은 해가면서 결국 다 들어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웃음)
아까부터 생각보다 포즈 잘 한다고 그러는데, 내가 그렇게 기대치가 낮았나?(웃음)
원래 상대방이 열심히 하면 나도 그렇게 하고, 대충하는 것 같으면 나도 그런다. 평소 직언하는 성격이기도하고, 그냥 투덜거리면서 푸는 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이후 1년 만의 복귀 작품으로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태양왕>을 선택했다. 어떤 매력에 끌렸나?
사실 1년 전부터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뇌출혈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과연 예정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생각했던 것처럼 근엄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루이 14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새로운 사랑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고, 노래도 클래식보다는 팝에 가깝다.
관객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프랑스어권 뮤지컬은 기존의 뮤지컬과 좀 다른 형식을 띤다. 드라마보다는 스펙터클한 쇼 형식이고, 댄서와 노래를 부르는 배우가 정확히 구분이 되어 있으니까.
우리나라 관객에겐 아직 낯선 것도 사실이다.
원작은 콘서트와 정통 뮤지컬 사이에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한 신 노래하고 모두 들어갔다가 또 우르르 나와서노래하는 식으로 신이 모두 나뉘어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적인 부분을 좀 더 추가했다. 이해가 쉽도록 줄거리가 이어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생각보다 복귀가 빨라서 놀랐다. 지금 무척 건강해 보인다.
나도 놀라웠다. 회복이라는 게 5개월, 1년 이런 식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까.
수술을 딱 끝마쳤을 때 나타나는 여러 마비 증세, 혹은 뇌사 상태가 추후 경과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수술 후 정사상적으로 회복이 되면 다행이지만, 장애가 보이면 꾸준히 재활을 해야 한다고 .
곁으로 보이는 마미 증세가 전혀 없을 확률이 7~8%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난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운동하면서 복귀를 준비했던 지난 1년간, 사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화도 많이 났고.

보통은 수술이 잘 끝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고들 하는데, 참 솔직한 발언이다.
병원에서는 눈을 탁 떴을 때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했다.
그 찰나의 순간으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어 버린 거다.
멀쩡하던 뇌를 수술을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니까 나도 모르게 수술이 끝나 있고, 다행이 전처럼 생각하는 건 가능한데 움직임은 불편하고..
솔직히 ‘신이 나를 다시 살게 했구나’, 같은 감사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처음엔 하필이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억울하다가 차츰 내가 전에 했던 것들을 똑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다못해 좌우 균형을 맞추는 일, 걷는 것부터 말이다.

수술 전과 후의 생활이 완전히 변했을 것 같다. 필연적으로 버려야만 하는 것들과 그럼에도 가지고 가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금주를 선언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맞나?
금주까지는 아니다. 수술 후에 어쩔 수 없이 술을 안 마신다고 했던 걸 그렇게 쓴 것 같다.
아마 언젠가 다시 마시지 않을까 싶다. 의사도 이제 가볍게 즐기는 건 괜찮다고 했고.
그런데 가볍게 할 거 뭐 하러 마시나? (웃음) 평생 술을 간단하게 먹어본 적이 없다.
배 부르려고 밥 먹듯이, 취하려고 마시는 게 술 아닌가.
요즘 술자리에 술 한 잔 안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까, 아예 안마시나 한두 잔 마시나 별 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인생의 큰 벗을 잃은 것처럼 들린다. 술 먹던 시간과 즐거움을 무엇으로 대체했나?
요즘 정말 재미없다. 이건 내가 전혀 몰랐던 삶이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내 개인 시간의 패턴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20년간 낮에 점심 약속을 잡는다거나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저녁 약속이라면 자연스럽게 거한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오히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니까 더 피곤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생활인지 나도 모르겠다. (웃음)

그래도 야구가 있지 않나. 얼마 전에도 구단주로 있는 야구팀 ‘재미삼아’가 일본으로 친선 경기를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다.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야구니까.
직업선수가 아니라 말 그래도 취미인지라, 승패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친구들, 그중에서도 나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팀이라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
다들 야구에 관해서라면 현역 관계자들이 인정할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

'숨겨진 기부 천사‘라는 말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서 모교 야구부에피칭머신, 정수기, 유니폼 등을 기증했다고 털어 놓으면서 덧붙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라 , 였다 (웃음)

문자 중계 2

방송이니까 우스겟소리로 던진 농담이다.
사실 소문내면서 좋은 일 하는 타입이 아니라 딱 받는 분만 알 수 있도록 한다.
솔직히 그걸 받은 학생들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자기들 먹는 정수기 물이 누가 갖다 놓은 건지 알고 먹어야 한 잔을 마셔도 고마운 줄 알지.
신입생들이 피칭 머신을 보고 으레 학교에 있는 기계인 줄 아는 것보단
'안재욱이 우리 선배님인데 이런 걸 줬어? 한 번 잘 나오나 해보자'하면서 연습하는 것... 좋지 않나?(웃음)

술 좋아하고 야구 좋아하는 안재욱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자연히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은 많은 해외 팬들이 요청하는데도 SNS를 전혀 하지 않을 만큼 폐쇄적인 타입이라고 알고 있다.
중국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하라고들 그러는데 내가 어디서 뭘 먹고, 무엇을 하는지 왜 알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 카카오 스토리를 해본 적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실례인 건 알지만 친구 맺어주실 수 있을까요?'같은 댓글을 자꾸 남겨서 그만뒀다.
실례인 줄 알면 안 해아 맞는 것 아닌가? 일은 물론 생활신조 역시 너무 나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다.
사실 대중의 관심과 호응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연예인이란 직업에 모순되는 생각이긴 하다.
난 무대 위에서 함성을 받는 딱 그 순간만 좋고 다른 시간에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으니까.
<별은 내 가슴에> 이후 다음 작품으로 연극 무대를 선택한 것도 갑자기 생긴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잘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웃음)
내 능력치를 아니까 이 인기를 계속 유지하기엔 버겁다는 고민도 있었고,
늘 화제가 되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생활을 할 자신도 없었다.

10년 만에 <살인마 잭>으로 뮤지컬에 복귀한 후 <황태자 루돌프>, <태양왕>까지 벌써 세 편째다.
그동안 뮤지컬에 대한 갈증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방송을 할지라도 1년에 한 편씩은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반드시 무대에 서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1999년쯤 뮤지컬을 하면서 회의가 들었다.
공연예술 쪽 특유의 되풀이되는 악습에 질려서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10년 만에 <살인마 잭>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라이센스 대작들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뮤지컬계의 안 좋은 관행도 많이 개선되었고.
그러다 보니 진작 이쪽에 더 있어서 좋은 작품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추억을 많이 쌓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쉰 넘어서까지 주인공을 고집할 순 없지 않나.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을 하더라도 한발 떨어진 느낌으로 임한다.
후배들은 나랑 같은 배역을 어떻게 표현하나 지켜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자주 보는데, 걔네들은 내 걸 안 보더라.(웃음)

이번 <태양왕>은 물론 <별은 내 가슴에> 이후 선택한 연극 등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늘 무대를 찾았다.
특히 <살인마 잭>은 시청율 6%로 종영한 드라마 <사랑해> 이후 1년 반 만의 복귀작이었다.
처음 겪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던 건가?
단순한 우연을 징크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진짜 징크스가 되는 것처럼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다른 때와 똑같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고 다음 일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는게 슬펌프가 아닐까 싶다.
하나가 잘 안 되면 당연히 다음 것에 대한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자연히 대중 앞에 드러나지 않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슬럼프라고 부른다.
사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다음 일이 잘되면 한 숨 놓게 되는 거다.
당시 우리나라가 초연이었던 <살인마 잭> 대본을 보고 단숨에 촉이 왔다.
내가 해야겠구나 싶어서 바로 다음 날 하겠다고 연락했다.
사실 그 10년간 뮤지컬에 생각은 있었지만 공연과 연습 기간이 굉장히 길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마침 그 '고민의 기간'이라 시간이 있기도 했고,
본능적인 감도, 타이밍도 다 잘 맞아떨어진 경우였다.

최초의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아직까지 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음반도 발매하고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고 있지만 결코 다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스로 내가 가진 능력이 별로라고 생각한다.
자꾸 남발하면 더 이상 남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주 못 보여드리는 것뿐이다.
후배들을 보면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또 다른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때로는 잊혀도 되는 것 아닐까?
그게 다음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내 모습을 숨기고 조급해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는 인기 많더니 요즘은 다 식었다는 말이 나왔다.
처음엔 속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일부러 안 하는 것이고,
내 선택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체적인 거품이 확 가라앉고 진짜 내 팬이 생겼으니 오히려 괜찮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건 없다.
처음부터 4~5등 정도로 유지하면서 끝까지 죽 가는 걸로 노선을 정했으니까.(웃음)




바자 4월호 . 값 6,900원
대형서점에서 샀습니다.

사실 오늘 잡지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전화로 확인한 다음에 찾은 도서매장에서의 바자.
지난 번 얇은 '더 뮤지컬' 잡지를 \8,000에 산 것에 비해, 두터운 잡지가 3권이나 한 꾸러미로 묶여 있는 바자 잡지를 보면서 놀라웠습니다.
광고가 많아서, 고퀄리티의 사진들로 이뤄진 잡지임에도, 값이 정말 저렴할 수 밖에 없나봐요.
받아든 팔이 묵직~~~하게, 표지에 나와 있는 '안재욱'이름을 확인하면서, 발걸음이 신났었답니다.
소장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
This Magazine can order in "Yesasia.com.hk"

http://www.yesasia.com/global/ha ... 0-0-zh_TW/info.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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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Photo] 2014년 4월호 ' 바자 BAZAAR'_ 우리가 모르는 안재욱

CliCK 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잡지 페이지 순서대로 입니다....
55번째 소피에 누워있는 모습은...두페이지에 걸쳐 있는 사진이에요..
(잘 붙이느라 낑낑거리긴 했는데....^^;;;)
어트케해도 잡지의 느낌 그대로를 살리는건 안되네요...
잡지로도 꼭 보세요~~~~



















Magazine content in Korean우리가 모르는 안재욱

익숙한 얼굴의 안재욱은 사실 낯선 속내의 소유자였다.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선택한 배우.
시간과 사건이 쌓이고 쌓여 드디어 드러난, 쉽게 볼수 없는 안재욱의 진짜 표정을 보았다.

에디터/권민지
Photographed by Shin Chaeyoung

또 다른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때로는 잊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게 다음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의도적으로 내 모습을 숨기고 조급해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식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많은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선택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안재욱은 20세기의 '오빠'였다. 지금 '도 매니저'를 외쳐대는 것처럼 초등학교 시절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강민 오빠'의 '포에버'를 흥얼거리곤 했다.오죽하면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결말이 바뀔 정도였으니.
본래 남자 주인공이었던 준희(차인표)를 밀어내고 애절한 눈빛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 남자의 사랑은 전
국민의 축복속에 해피 엔딩을 맞았다. 드라마와 뮤지컬, 가수까지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 드라마를 알리고
이어서 노래까지 히트시키는 지금 한류의 수순을 가장 먼저 밟은 것도 안재욱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안재욱은
잠잠했다. 생각해보면 <해바라기>의 냉정한 외과의사, <천생연분>의 장난기 넘치는 연하남, <오! 필승 봉순영>
의 순수한 백수건달 등 드라마 속 안재욱은 익숙하지만 진짜 안재욱의 모습은 오리무중이다. "앞으로 3년간
만날 수 없는 분이니 센 질문만 던지겠다"는 <라디오 스타> MC의 선언이 말하듯, 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안재욱은 긴 머리를 어깨 밑으로 늘어트린 채 촬영장에 나타났다. 오는 4월부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태양왕>의
루이 14세 역할을 위해서다. "내가 뒷담화 하는 걸  좋아했죠.(웃음)" 그는 인터뷰 내내 농담을 섞어가며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대중의 관심을 즐기기보다는 시선 밖으로 숨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추억 속 만인의
연인이 아니라 현실에서 오래도록 존재하기 위한 그만의 생존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랫만의 촬영일 텐데 자연스러워 보인다. 카페와 스튜디오를 오가고 요구사상이 많았는데도 할 말은 해가면서
결국 다 들어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웃음)  

아까부터 생각보다 포즈를 잘 한다고 그러는데, 내가 그렇게 기대치가 낮았나?(웃음) 원래 상대방이 열심히 하면
나도 그렇게 하고 대충 하는것 같으면 나도 그런다. 평소 지적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냥 투덜거리면서 푸는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이후 1년 만의 복귀 작품으로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태양왕>을 선택했다.
어떤 매력에 끌렸나?

사실 1년 전부터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뇌출혈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과연 예정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생각했던 것처럼 근엄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사랑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고 노래도 클래식보다는 팝에 가깝다. 관객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프랑스어권 뮤지컬은 기존의 뮤지컬과 좀 다른 형식을 띤다. 드라마 보다는 스펙터클한 쇼 형식이고, 댄서와
노래를 부르는 배우가 정확히 구분이 되어 있으니까. 우리나라 관객에겐 아직 낯선 것도 사실이다.

원작은 콘서트와 정통 뮤지컬 사이에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한 신 노래하고 모두 들어갔다가 또 우르르 나와서
노래하는 식으로 신이 모두 나뉘어있다. 호불호가 갈릴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적인 부분을 좀 더 추가했다.
이해가 쉽도록 줄거리가 이어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복귀가 빨라서 놀랐다. 지금 무척 건강해 보인다.

나도 놀라웠다. 회복이라는 게 5개월, 1년 이런 식의 정답이 정해져있지 않았으니까. 수술후 딱 끝마쳤을 때
나타나는 여러 마비 증세 혹은 뇌사 상태가 추후 경과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수술 후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면
다행이지만 장애가 보이면 꾸준히 재활을 해야 한다고. 겉으로 보이는 마비 증세가 전혀없을 확률이 7~8% 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난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운동하면서 복귀를 준비했던 지난 1년간, 사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화도 많이 났고.



보통 수술이 잘 끝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고들 하는데, 참 솔직한 발언이다.

병원에서 눈을 탁 떴을 때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서 수백번씩 했다.
그 찰나의 순간으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거다. 멀쩡하던 뇌를 수술을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니까 나도 모르는
수술이 끝나 있고, 다행이 전처럼 생각하는 건 가능한데 움직임은 불편하고. 솔직히 신이 나를 다시 살게 했구나,
같은 감사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처음엔 하필이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억울하다가 차츰 내가 전에 했던
것들을 똑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다못해 좌우 균형을 맞추는 일, 걷는 것부터 말이다.



수술 전과 후의 생활이 완전히 변했을 것 같다. 필연적으로 버려야만 하는 것들과 그럼에도 가지고 가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금주를 선언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맞나?  

금주까지는 아니다. 수술 후에 어쩔 수 없이 술을 안 마신다고 했던 걸 그렇게 쓴 것 같다. 아마 언젠가 다시 마시지
않을까 싶다. 의사도 이제 가볍게 즐기는 건 괜찮다고 했고. 그런데 가볍게 할 거 뭐 하러 마시나?(웃음)
평생 술을 간단하게 먹어본 적이 없다. 배 부르려고 밥 먹듯이 취하려고 마시는 게 술 아닌가. 요즘 술자리에 술 한잔
안 하고 앉아 있다 보니까 아예 안 마시나 한두 잔 마시나 별 차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인생의 큰 벗을 잃은 것처럼 들린다. 술 먹던 시간과 즐거움을 무엇으로 대체했나?

요즘 정말 재미없다. 이건 내가 전혀 몰랐던 삶이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내 개인 시간의 패턴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20년간 낮에 점심 약속을 잡는다거나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저녁 약속이라면 자연스럽게 거한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오히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니까 더 피곤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생활인지 나도 모르겠다.(웃음)



그래도 야구가 있지 않나. 얼마 전에도 구단주로 있는 야구팀 '재미삼아'가 일본으로 친선 경기를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다.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야구니까. 직업 선수가 아니라 말 그래도
취미인지라 승패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친구들, 그중에서도 나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팀이라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 다들 야구에 관해서라면 현역 관계자들이 인정할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



'숨겨진 기부  천사'라는 말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서 모교 야구부에 피칭 머신, 정수기, 유니폼 등을
기증했다고 털어놓으면서 덧붙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왼손이 할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라, 였다(읏음)  

방송이니까 우스갯소리로 던진 농담이다. 사실 소문내면서 좋은 일 하는 타입이 아니라 딱 받는 분만 알수 있도록 한다.
솔직히 그걸 받은 학생들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자기들 먹는 정수기 물이 누가 갖다 놓은 건지 알고 먹어야 한 잔을
마셔도 고마운 줄 알지. 신입생들이 피칭 머신을 보고 으레 학교에 있는 기계인 줄 아는 것보단 '안재욱이 우리 선배님
인데 이런 걸 줬어? 한 번 잘 나오나 해보자'하면서 연습하는 것. 좋지 않나?(웃음)



술 좋아하고 야구 좋아하는 안재욱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자연히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은 많은 해외 팬들이 요청하는데도 SNS를 전혀 하지 않을 만큼 폐쇄적인 타입이라고 알고 있다.

중국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하라고들 그러는데 내가 어디서 뭘 먹고, 무엇을 하는지 왜 알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 카카오 스토리를 해본 적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실례인 건 알지만 친구 맺어주실 수 있을까요?'같은 댓글을
자꾸 남겨서 그만뒀다. 실례인 줄 알면 안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일은 물론 생활신조 역시 너무 나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다. 사실 대중의 관심과 호응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연예인이란 직업에 모순되는 생각이긴 하다.
난 무대 위에서 함성을 받는 딱 그 순간만 좋고 다른 시간에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으니까. <별은 내 가슴에>
이후 다른 작품으로 연극 무대를 선택한 것도 갑자기 생긴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잘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웃음) 내 능력치를 아니까 이 인기를 계속 유지하기엔 버겁다는 고민도 있었고,
늘 화제가 되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생활을 할 자신도 없었다.



10년 만에 <살인마 잭>으로 뮤지컬에 복귀한 후 <황태가 루돌프>, <태양왕>까지 벌써 세 편째다. 그동안 뮤지컬에
대한 갈증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방송을 할지라도 1년에 한 편씩은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반드시 무대에 서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1999년쯤
뮤지컬을 하면서 회의가 들었다. 공연예술 쪽 특유의 되풀이되는 악습에 질려서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10년 만에
<살인마 잭>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라이선스 대작들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뮤지컬계의
안 좋은 관행도 많이 개선되었고. 그러다 보니 진작 이쪽에 더 있어서 좋은 작품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추억을 많이 쌓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쉰 넘어서까지
주인공을 고집할 순 없지 않나.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을 하더라고 한 발 떨어진 느낌으로 임한다. 후배들은
나랑 같은 배역을 어떻게 표현하나 지켜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자주 보는데, 걔네들은 내 걸 안 보더라(웃음)



이번 <태양왕>은 물론 <별은 내 가슴에> 이후 선택한 연극 등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늘 무대를 찾았다.
특히 <살인마 잭>은 시청률 6%로 종영한 드라마 <사랑해> 이후 1년 반 만의 복귀작이었다. 처음 겪는 슬럼플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던 건가?

단순한 우연을 징크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진짜 징크스가 되는 것처럼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다른 때와 똑같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고 다음 일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는 게 슬럼프가 아닐까 싶다. 하나가 잘 안 되면 당연히 다음 것에 대한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자연히 대중 앞에 드러나지 않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슬럼프라고 부른다. 사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같은 건 없다.
다음 일이 잘되면 한 숨 놓게 되는 거다. 당시 우리나라 초연이었던 <살인마 잭> 대본을 보고 단숨에 촉이 왔다.
내가 해야겠구나 싶어서 바로 다음 날 하겠다고 연락했다. 사실 그 10년간 뮤지컬에 생각은 있었지만 공연과 연습
기간이 굉장히 길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마침 그 '고민의 시간'이라 시간이 있기도 했고. 본능적인 감도, 타이밍도
다 잘 맞아 떨어진 경우였다.



최초의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아직까지 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음반도 발매하고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고
있지만 결코 다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스로 내가 가진 능력이 별로라고 생각한다. 자꾸 남발하면 더 이상 남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주 못 보여
드리는 것뿐이다. 후배들을 보면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또 다른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때로는 잊혀도 되는 것 아닐까? 그게 다음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내 모습을 숨기고 조급해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는 인기 많더니
요즘은 다 식었다는 말이 나왔다. 처음엔 속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일부러 안 하는 것이고,내 선택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체적은 거품이 확 가라앉고 진짜 내 팬이 생겼으니 오히려 괜찮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건 없다. 처음부터 4~5등 정도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죽 가는걸로 노선을 정했으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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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概的意思,大概的大概

"Bazzar" 4 月期刊
5樓芭莎雜誌採訪內容大意:
前言部分只翻了一段
我們所不知道的安在旭
安在旭熟悉的面孔,事實上陌生的內心(?)
比起暴露更願選擇隱藏的演員。
隨著時間的堆積終於暴露出來,
無法輕易看到安在旭真正的表情。


第一部分的其中一部分:
安在旭是 20 世紀的"哥哥「。就像現在周圍高喊‘都經紀人’(都教授)一樣
初中時代我周圍的人們都哼唱著江民哥哥的‘Forever’
連電視劇《星星在我心》(星夢奇緣)的結局都不得不更改的程度
推開原本的男主人公俊立(車仁表),悲痛的眼神懸著的心放了下來
這個男人的愛情在全國人民的祝福聲中獲得大團圓結局。
涉獵電視劇和音樂劇、歌手的萬能藝人,讓人瞭解電視劇,接下來是歌曲反響強烈
即使到現在提到韓流的順序往往首先提到的就是安在旭(這句叫一個亂啊,大意...)


但此後安在旭風平浪靜(?)
試想看《向日葵》裡冷靜的外科醫生,<天生緣分>裡過分淘氣的年下男、<必勝奉順英>的純粹的痞子等,電視劇中的安在旭雖然熟悉,但真正的安在旭的樣子我們卻壓根兒不知道。


與在《廣播明星》裡當mc時說的宣言一樣「今後 3 年間無法見到的各位,只能通過提問」。連常見的藝能節目中,想看到他的臉也不是一件容易的事。
安在旭是以垂及肩膀以下的長髮形象出現在片場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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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바자(BAZZAR) 4월호 폰배경 사이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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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月《芭莎》雜誌採訪內容大意(原文5樓)

第一部分的第二部分

從今年4月開始,為了音樂劇《太陽王》的路易14登上舞臺。

在旭說:「以我的實力不怎麼願意的緣故,

抛頭露面我不喜歡我更喜歡用幕後談話來代替(笑)」

在採訪期間他雖然一直打趣開玩笑的這樣說,

但事實上,與其說享受大眾關心被外界注視,

他更願選擇隱藏自己。

不是曾經記憶中億萬人的戀人,

而是為了現實中長久存在,

也許只是他個人的生存法則。

久違的拍攝吧,卻顯得很自然。

來往咖啡館和工作室,我們要求的事項那麼多,

一邊說話的同時他最終滿足所有要求給人留下深刻印象。(笑)



音樂劇《皇太子魯道夫》後,

作為時隔1年後的回歸作品,

選擇了這部講述路易14的音樂劇《太陽王》。

被什麼樣的魅力迷住了嗎?

事實上,從1年前開始對作品進行了相關討論。

因腦出血手術後,真的想按原計劃進行。

首先,法國歷史上最強權力的人物,

和當初預想的一樣,並不是嚴肅沉重的故事,

而是以輕快、明朗的氛圍,這讓我感到滿意。

路易14未能實現的愛情,新的愛情主線的作品,

歌曲也相比古典樂更接近的流行樂。

觀眾也毫無負擔地可以享受的整體氛圍,所以決定出演。



4月《芭莎》雜誌採訪內容大意(原文6樓)想起旭在夏令營中說的話,好心痛

《我們所不知道的安在旭》

小編:比想像中恢復得更快很是吃驚。現在看起來非常健康。

旭:我也感到很驚訝。恢復了5個月,所以這樣一年的答案是只能被決定(這句看不懂)

手術結束的時候,擔心出現一些麻痹症狀,或術後經歷腦死亡的情況。

手術後從思想上能恢復雖然是萬幸,但若表現出障礙的話應該持續做康復。

看到周圍,完全沒有後遺症的幾率只有7%到8%,我還算是運氣好。

去年一年間,一邊運動一邊為恢復準備,

事實上,相比起身體,心更為艱難,火氣也多了許多。

通常,手術成功結束後,應當懷有感激之情,

但坦率的說,在醫院,睜開眼的瞬間,真的好像做夢一樣,

像小說或電影的一個場景一樣,每天數百次的思考,

刹那間,我的人生完全被改變了。

好端端的腦部接受手術並在麻醉中蘇醒過來,

所以我也在不知不覺中結束手術,

幸運的是我可以和以前一樣思考,行動也沒有什麼不便。




4月《芭莎》雜誌內容大意:

《我們所不知道的安在旭》

在旭:坦白地說,諸如「神啊,我重生了」這樣的感受無暇考慮。

起初,為什麼偏偏對我這樣,覺得發生這種事有多冤啊,

漸漸的對於能不能做到和我以前完全一樣的不安感突然襲來,

哪怕是配合左右平衡的事,也要從走路開始的地步。

手術前後的生活完全變了一樣,

必然要拋棄的種種和儘管這樣也不想拿走的東西。

首先就讀到了宣佈戒酒的報導,對吧?

不止是戒酒,報導中似乎寫到「因為手術後不得已才沒喝酒這樣的話」。

也許,總有一天應該不會再喝酒,

醫生也說過現在稍微享受(喝酒)沒關係的話,

但是會輕鬆地去喝什麼呢?(笑)平生就沒有簡單的喝酒的經歷。

好似為了填飽肚子吃飯,不是為了喝醉而是酒好喝。(?)

最近在酒桌上,因為一杯酒都不喝看上去靜靜的坐著,

有了索性不喝或者喝一兩杯也沒什麼區別的想法。



《我們所不知道的安在旭》


在旭:令人覺得像失去了人生的最重要朋友的一樣。

小編:喝酒的時間和樂趣用什麼來代替呢?

在旭:最近真的很沒意思。這是我完全不了解的生活。

除開工作時間我個人時間的模式本身被完全改變。

20年間,在白天安排午餐約定或在咖啡店點上一杯茶邊喝邊交談這種事從沒有過。

如果說是與親近的人之間有晚餐約定,那麼自然地酒宴似的一杯接一杯,這是必然的。

反而因為早起早睡更勞累,到底這是什麼生活我也不知道。(笑)



小編:雖說如此,不是還有棒球嗎?

我知道不久前也作為職業棒球聯盟棒球隊的 Jemisama去日本進行友誼賽回來了。

在旭:唯一一個愉快的時間,雖然本來就喜歡體育運動,但是最喜歡的還是棒球。

雖稱不上職業選手,但因為興趣所在,勝敗也不會太在意。

喜歡的朋友們也在其中,因為是和我一樣喜歡棒球的這類人聚集的團隊,

對話真的能很好的溝通。

(後面一小段有關棒球的內容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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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月《芭莎》雜誌內容大意(第二部分):

大家關於棒球具有現役球員認可程度的知識。(上一話題的內容)

小編:你有「隱秘的捐贈天使」的說法,

在綜藝節目《Healing Camp》裡,

聽說你向母校棒球部捐贈了自動投球機,淨水器,運動制服等,

一邊和盤托出一邊補充說明給人留下非常深刻的印象。

左手要做的事要讓右手知道(注:繼承者臺詞)(笑)




在旭:因為是廣播(節目),以玩笑話的方式拋出的戲言。

事實上,做件好事就聲張不是我喜歡的方式,

正好做到只有接收的人能知道的程度就好。

坦率的說,這個事接收的學生們不應該知道嗎?

自己喝的吹淨水是誰拿來放著不知道只有喝了一杯也會感謝的。

新生們看到自動投球機自然會知道學校有了個機器。

"安在旭是我們的前輩,這些是他給的?我去試一次看看"

伴著(這樣的想法)練習,不好吧?(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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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月《芭莎》雜誌內容大意(第二部分)

關於喜歡喝酒喜歡棒球的安在旭的誤解中有一個是,

好像喜歡自然而然的與人們融洽的相處但是形象好像又不是這樣的。

事實上,很多海外 fans 那樣請求,完全不可能發短信,我也知道因為是封閉的形式。

為了與中國 fans 們的溝通, 但是我不知道為什麼要知道我在哪裡,吃什麼,做什麼。

使用過一次KAKAO STORY(應用程式),

不認識的人總是留下‘雖然很失禮,但可以結成朋友嗎?」這類的回帖,就不再使用了




知道會失禮的話不是應該做合適的事嗎?(??)

工作自不用說,生活時間還是不要太折騰,只是我能做到程度就好。

事實上只有大眾的關注支援才能生存的藝人和職業相矛盾有這樣的想法

在舞臺上得到呐喊聲,只是那一瞬間覺得好,其他時間想徹底的過自己的日子。

《星星在我心》之後下一部作品選擇戲劇舞臺,因為突然出現的關心而有所負擔。

雖然我知道(反映)會這麼好,但也沒料到好到這種地步。(笑)

我知道我的能力,也因持續維持人氣吃力而苦惱

常常成為大眾議論的話題連自己的生活也沒有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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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우리가 모르는 안재욱 Stars/People / Harper's BAZZAR

익숙한 얼굴의 안재욱은 사실 낯선 속내의 소유자였다.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선택한 배우.

시간과 사건이 쌓이고 쌓여 드디어 드러난, 쉽게 볼 수 없는 안재욱의 진짜 표정을 보았다.



패치워크 코트와 팬츠는 Dior Homme, 앵클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안재욱은 20세기의 ‘오빠’였다. 지금 ‘도 매니저’를 외쳐대는 것처럼 초등학교 시절 내 주변 모든 사람들은 ‘강민 오빠’의 ‘포에버’를 흥얼거리곤 했다. 오죽하면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의 결말이 바뀔 정도였으니. 본래 남자 주인공이었던 준희(차인표)를 밀어내고 애절한 눈빛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이 남자의 사랑은 전 국민의 축복 속에 해피 엔딩을 맞았다. 드라마와 뮤지컬, 가수까지 섭렵한 만능 엔터테이너, 드라마를 알리고 이어서 노래까지 히트시키는 지금 한류의 수순을 가장 먼저 밟은 것도 안재욱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안재욱은 잠잠했다. 생각해보면 <해바라기>의 냉정한 외과의사, <천생연분>의 장난기 넘치는 연하남, <오! 필승 봉순영>의 순수한 백수건달 등 드라마 속 안재욱은 익숙하지만 진짜 안재욱의 모습은 오리무중이다. “앞으로 3년간 만날 수 없는 분이니 센 질문만 던지겠다”는 <라디오 스타> MC의 선언이 말하듯, 흔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안재욱은 긴 머리를 어깨 밑으로 늘어트린 채 촬영장에 나타났다. 오는 4월부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태양왕>의 루이 14세 역할을 위해서다. “내가 가진 실력이 별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에 나서는 걸 싫어했어요. 대신 뒷담화 하는 걸 좋아했죠.(웃음)” 그는 인터뷰 내내 농담을 섞어가며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대중의 관심을 즐기기보다는 시선 밖으로 숨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추억 속 만인의 연인이 아니라 현실에서 오래도록 존재하기 위한 그만의 생존법이었는지도 모른다.



패턴 수트와 셔츠, 보타이는 모두 Caruso by  Chang Kwanghyo 제품.


오랜만의 촬영일 텐데 자연스러워 보인다. 카페와 스튜디오를 오가고 요구사항이 많았는데도 할 말은 해가면서 결국 다 들어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웃음) 아까부터 생각보다 포즈 잘 한다고 그러는데, 내가 그렇게 기대치가 낮았나?(웃음) 원래 상대방이 열심히 하면 나도 그렇게 하고 대충 하는 것 같으면 나도 그런다. 평소 직언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그냥 투덜거리면서 푸는 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이후 1년 만의 복귀 작품으로 루이 14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태양왕>을 선택했다. 어떤 매력에 끌렸나?

사실 1년 전부터 작품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뇌출혈로 수술을 받게 되면서 과연 예정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일단, 프랑스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임에도 생각했던 것처럼 근엄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아닌,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루이 14세의 이루지 못한 사랑, 새로운 사랑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고 노래도 클래식보다는 팝에 가깝다. 관객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출연을 결정했다.

프랑스어권 뮤지컬은 기존의 뮤지컬과 좀 다른 형식을 띤다. 드라마보다는 스펙터클한 쇼 형식이고, 댄서와 노래를 부르는 배우가 정확히 구분이 되어 있으니까. 우리나라 관객에겐 아직 낯선 것도 사실이다. 원작은 콘서트와 정통 뮤지컬 사이에 있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한 신 노래하고 모두 들어갔다가 또 우르르 나와서 노래하는 식으로 신이 모두 나뉘어 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에 드라마적인 부분을 좀 더 추가했다. 이해가 쉽도록 줄거리가 이어질 수 있게 준비 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복귀가 빨라서 놀랐다. 지금 무척 건강해 보인다. 나도 놀라웠다. 회복이라는 게 5개월, 1년 이런 식의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까. 수술을 딱 끝마쳤을 때 나타나는 여러 마비 증세 혹은 뇌사 상태가 추후 경과를 결정짓는다고 했다. 수술 후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면 다행이지만 장애가 보이면 꾸준히 재활을 해야 한다고. 겉으로 보이는 마비 증세가 전혀 없을 확률이 7~8%밖에 안 된다고 하는데 난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운동하면서 복귀를 준비했던 지난 1년간, 사실 몸보다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화도 많이 났고.

보통은 수술이 잘 끝난 것에 대한 고마움을 느꼈다고들 하는데, 참 솔직한 발언이다. 병원에서 눈을 탁 떴을 때 정말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했다. 그 찰나의 순간으로 내 삶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거다. 멀쩡하던 뇌를 수술을 하고 마취에서 깨어나니까 나도 모르게 수술이 끝나 있고, 다행히 전처럼 생각하는 건 가능한데 움직임은 불편하고. 솔직히 신이 나를 다시 살게 했구나, 같은 감사는 느낄 겨를이 없었다. 처음엔 하필이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억울하다가 차츰 내가 전에 했던 것들을 똑같이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다못해 좌우 균형을 맞추는 일, 걷는 것부터 말이다.

수술 전과 후의 생활이 완전히 변했을 것 같다. 필연적으로 버려야만 하는 것들과 그럼에도 가지고 가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일단 금주를 선언했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맞나? 금주까지는 아니다. 수술 후에 어쩔 수 없이 술을 안 마신다고 했던 걸 그렇게 쓴 것 같다. 아마 언젠가 다시 마시지 않을까 싶다. 의사도 이제 가볍게 즐기는 건 괜찮다고 했고. 그런데 가볍게 할 거 뭐 하러 마시나?(웃음) 평생 술을 간단하게 먹어본 적이 없다. 배 부르려고 밥 먹듯이 취하려고 마시는 게 술 아닌가. 요즘 술자리에 술 한잔 안 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 보니까 아예 안 마시나 한두 잔 마시나 별 차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인생의 큰 벗을 잃은 것처럼 들린다. 술 먹던 시간과 즐거움을 무엇으로 대체했나? 요즘 정말 재미없다. 이건 내가 전혀 몰랐던 삶이다.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내 개인 시간의 패턴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20년간 낮에 점심 약속을 잡는다거나 카페에서 차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친한 사람들끼리의 저녁 약속이라면 자연스럽게 거한 술자리로 이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오히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니까 더 피곤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생활인지 나도 모르겠다.(웃음)

그래도 야구가 있지 않나. 얼마 전에도 구단주로 있는 야구팀 ‘재미삼아’가 일본으로 친선 경기를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유일하게 즐거운 시간이다. 워낙 스포츠를 좋아하긴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게 야구니까. 직업 선수가 아니라 말 그대로 취미인지라 승패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하는 친구들, 그중에서도 나만큼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팀이라 대화가 정말 잘 통한다. 다들 야구에 관해서라면 현역 관계자들이 인정할 정도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

‘숨겨진 기부 천사’라는 말이 있다. 예능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서 모교 야구부에 피칭 머신, 정수기, 유니폼 등을 기증했다고 털어놓으면서 덧붙인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게 하라, 였다.(웃음)방송이니까 우스갯소리로 던진 농담이다. 사실 소문내면서 좋은 일 하는 타입이 아니라 딱 받는 분만 알 수 있도록 한다. 솔직히 그걸 받은 학생들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자기들 먹는 정수기 물이 누가 갖다 놓은 건지 알고 먹어야 한 잔을 마셔도 고마운 줄 알지. 신입생들이 피칭 머신을 보고 으레 학교에 있는 기계인 줄 아는 것보단 ‘안재욱이 우리 선배님인데 이런 걸 줬어? 한 번 잘 나오나 해보자’ 하면서 연습하는 것. 좋지 않나?(웃음)




니트 톱은 Jpblum by John White, 배기 팬츠는 Les Hommes by John White, 페도라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술 좋아하고 야구 좋아하는 안재욱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자연히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할 것 같다는 이미지가 아닐까 싶다. 사실은 많은 해외 팬들이 요청하는데도 SNS를 전혀 하지 않을 만큼 폐쇄적인 타입이라고 알고 있다. 중국 팬들과의 소통을 위해서 하라고들 그러는데 내가 어디서 뭘 먹고, 무엇을 하는지 왜 알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한번 카카오 스토리를 해본 적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 ‘실례인 건 알지만 친구 맺어주실 수 있을까요?’ 같은 댓글을 자꾸 남겨서 그만뒀다. 실례인 줄 알면 안 해야 맞는 것 아닌가? 일은 물론 생활신조 역시 너무 나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것이다. 사실 대중의 관심과 호응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연예인이란 직업에 모순되는 생각이긴 하다. 난 무대 위에서 함성을 받는 딱 그 순간만 좋고 다른 시간에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삶을 살고 싶으니까. <별은 내 가슴에> 이후 다음 작품으로 연극 무대를 선택한 것도 갑자기 생긴 관심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내가 잘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까지 잘될 줄은 몰랐다.(웃음) 내 능력치를 아니까 이 인기를 계속 유지하기엔 버겁다는 고민도 있었고, 늘 화제가 되고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생활을 할 자신도 없었다.

10년 만에 <살인마 잭>으로 뮤지컬에 복귀한 후 <황태자 루돌프>, <태양왕>까지 벌써 세 편째다. 그동안 뮤지컬에 대한 갈증을 항상 지니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때부터 방송을 할지라도 1년에 한 편씩은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반드시 무대에 서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1999년쯤 뮤지컬을 하면서 회의가 들었다. 공연예술 쪽 특유의 되풀이되는 악습에 질려서 안 하겠다고 다짐했다가 10년 만에 <살인마 잭>으로 복귀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라이선스 대작들도 끊임없이 들어오고 뮤지컬계의 안 좋은 관행도 많이 개선되었고. 그러다 보니 진작 이쪽에 더 있어서 좋은 작품에 많이 참여했으면 좋았을 거란 아쉬움이 많이 든다.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좋은 작품에 대한 추억을 많이 쌓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쉰 넘어서까지 주인공을 고집할 순 없지 않나. 더블 캐스팅, 트리플 캐스팅을 하더라도 한 발 떨어진 느낌으로 임한다. 후배들은 나랑 같은 배역을 어떻게 표현하나 지켜보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자주 보는데, 걔네들은 내 걸 안 보더라.(웃음)

이번 <태양왕>은 물론 <별은 내 가슴에> 이후 선택한 연극 등 큰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늘 무대를 찾았다. 특히 <살인마 잭>은 시청율 6%로 종영한 드라마 <사랑해> 이후 1년 반 만의 복귀작이었다. 처음 겪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이었던 건가? 단순한 우연을 징크스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진짜 징크스가 되는 것처럼 슬럼프도 마찬가지다. 다른 때와 똑같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니까, 내 능력에 대한 의심을 갖게 되고 다음 일에 대한 고민이 길어지는 게 슬럼프가 아닐까 싶다. 하나가 잘 안 되면 당연히 다음 것에 대한 선택이 신중해질 수밖에 없지 않나. 자연히 대중 앞에 드러나지 않게 되는데 사람들은 그걸 슬럼프라고 부른다. 사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다음 일이 잘되면 한 숨 놓게 되는 거다. 당시 우리나라 초연이었던 <살인마 잭> 대본을 보고 단숨에 촉이 왔다. 내가 해야겠구나 싶어서 바로 다음 날 하겠다고 연락했다. 사실 그 10년간 뮤지컬에 생각은 있었지만 공연과 연습 기간이 굉장히 길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마침 그 ‘고민의 기간’이라 시간이 있기도 했고. 본능적인 감도, 타이밍도 다 잘 맞아떨어진 경우였다.

최 초의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아직까지 그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다. 음반도 발매하고 드라마와 뮤지컬을 오가고 있지만 결코 다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스스로 내가 가진 능력이 별로라고 생각한다. 자꾸 남발하면 더 이상 남을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자주 못 보여드리는 것뿐이다. 후배들을 보면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또 다른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때로는 잊혀도 되는 것 아닐까? 그게 다음 모습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내 모습을 숨기고 조급해하지 않는 타입이다.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에는 인기 많더니 요즘은 다 식었다는 말이 나왔다. 처음엔 속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일부러 안 하는 것이고, 내 선택이라고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체적인 거품이 확 가라앉고 진짜 내 팬이 생겼으니 오히려 괜찮다. 사실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건 없다. 처음부터 4~5등 정도로 유지하면서
끝까지 죽 가는 걸로 노선을 정했으니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