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11.29 今天韓國朝鮮日報報導有關在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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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4년 11월 29일 조선일보 토일섹션 Why? (B4,B5면)에 실린 "안재욱"기사[수정]

재욱님은 공연이 없는 11월 2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셨네요
사진에 나온 재욱님 모습은 루돌프와는 또 다른.. (안경은.. 안경은 인터뷰때는 쓰지 마요..)


안재욱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고 갈 뻔했죠… 삶이 이토록 절실 할 줄이야"
뇌동맥류 파열, 중환자실 한달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 없는 건 비행기 추락 사고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라고 하더라.

죽다 살아나자… 삶은 내 가슴에
남산서 만난 70代 할아버지… '몸 챙기라'며 어깨 두드려줘 다시 무대 오를 힘 얻었죠

복귀작 뮤지컬 '태양왕'은 혹평
그렇게 많은 욕 먹어보긴 처음… '보면 시간낭비'라고들 하대요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죠… 욕먹은 만큼 성숙해진 것 같아요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로비에선 요즘 전에 없이 중국어가 자주 들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공연 사진이 걸린 포토존에서는 젊은 중국 여성들이 한 배우의 사진 앞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끌어안을 듯 붙잡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진의 주인공은 배우 안재욱(43)이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뇌동맥류가 파열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던 그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루돌프'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다.
"확실히 연기가 더 깊어졌다"는 평을 받는 그를 지난 22일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던 안재욱은 병마(病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혹평을 받은 출연작에 대한 비판에서는 관록 있는 배우의 여유와 솔직함이 엿보였다.
다음 달 새 음반을 낸다는 그는“예전보다 절실해지고 따뜻해진 안재욱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 이덕훈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Q : 미국여행중에 갑자기 아팠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중한 상황이었다는데..
A : 속이 체한듯 불편해서 헛구역질을 하다 극심한 두통에 정신을 잃었다. 아마 그때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인의 집에서 지내던 중이라 바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5시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한달을 누워 있었다.  지금은 건강하다.
      담당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경우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로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하더라.

Q : 수술 직후 눈을 떴던 순간을 기억하나?..
A :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깨어나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뜨니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 뜨지 않았다.

Q : 분노를 어떻게 이겼나?...
A : 다시 삶이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했다. 눈뜨면 별생각없이 일어나 스케줄대로 살아가던 삶이었는데, 이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건지, 큰 수수께기다
     쓸데없이 고집 부리고 잘난척하던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Q : 고비를 넘기고 깨달은 점이 있다면....
A : 내가 생각하던 세상은 각박하고 냉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병을 털고 나와보니 모든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절실해지니 따뜻해졌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툴렀는데, 고마울때마도 꼭 표현하고, 속상하면 쌓이기전에 먼저 다가가서 풀어버린다. 그날 이후 제게 주어진 시간은 미리 열어 본 크리스마스 선물상자 같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들이 와르르 쏟아져서 내 앞에 놓여 있다. 그때 끝나버렸다면 못 이뤘을게 얼마나 많았겠나.
      꿈꾸던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못따고,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고... 하나씩 풀어봐야 할 트리 옆 선물이 한꺼번에 '날 좀 봐달라'고 하니 기쁘고 감사하긴 한데 다 해 낼수 있을지...

Q :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A : 수술받고 한달만에 귀국한 후에는 집에만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하루는 운동삼아 남산을 걷다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다.
      "안재욱 아니냐? 미국에서 다쳤다며? 어때?라고 인사를 건네시더니 주위 친구분들을 불러 모으셨다.  
      다들 '기사봤다', '몸 챙기라'며 자식을 대하듯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예전에 받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떠올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나가보자는 용기를 냈다.


그는 아프고 나서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인인 복귀작이던 프랑스 라이선스 뮤지컬 '태양왕'  이었다.
지난 4월 개막한 태양왕은 공연관계자들끼리도 "보러 가면 시간낭비"라며 만류할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세월호 여파도 겹쳐 관객대신 찬바람이 객석을  채운 날도 많았다.


Q : 복귀작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을텐데...
A : 태어나 그렇게 많은 욕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첫 공연하던 날은 틀린 답을 써낸 줄 알면서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 심정이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매일 천근만근이었다. 우선은 내 탓이다. 루이 14세를 다룬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정도만 알고 승낙했다. 작품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골랐어야 했다.

Q : 실망이 컸을텐데 어떻게 버텼나...
A : 우연히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 양창순씨가 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였다. '누군가 단점을 지적하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장점을 말해주면  그들과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일방적인 비난만 하면 그들의 세계라고 치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혹평임에도 보러 와주신 관객에게 죄송하고 짠한 마음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에게 무대 인사할 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만큼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안재욱(오른쪽)이 출연 중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 '별은 내 가슴에'로 한류스타 등극
     올해 데뷔 20년을 맞았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다니던 안재욱의 목표는 '최불암'이었다.
      최불암처럼, 이름 석자만 대ㅔ면 모두가 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리라던 꿈은 MBC공채 탤런트로 데뷔한지 3년만인 1996년 '별은 내가슴에'에 출연하며 단숨에 이뤄졌다.
      드라마는 중국으로 수출되며 초창기 한류 열풍을 주도했다.  그를 보려고 베이징과 대만 등 해외 콘서트장에 수만명이 몰려들었다.  
      2000년 삼성전자가 안재욱을 중국 현지 CF모델로 내세운 이후 모니터 판매량이 전년도의 2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Q : 일찌감치 스타가 됐으니 인기를 유지했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컸겠다.
A : '별은 내가슴에' 수준의 인기를 계속 누리려고 매달렸으면 공황장애가 왔을 것이다. 단시간에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에 유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스타라고 의식하면 망가지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대중속에 섞여 살았다. 재래시장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온 동네를 헤집으며 운동하고 다녔다.
      다행히 제 얼굴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Q : 일부에서는 '별은 내가슴에'이후 안재욱은 내리막이 아니냐고 하는데...
A : 시청률로만 보면 '별'보다 높은 드라마도 있다. 그래도 대중은 '별'만 기억한다. 대놓고 '별은 내가슴에'에 나올 땐 인기 많으셨죠라고 인사하신 분도 있었다.
      물론 듣기 싫다. 하지만 그게 대중이다. TV에 가장 자주 나오는 사람이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안나오면 바로 잊어버리고



안재욱은 2012년 MBC연기대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됐다.  
64부작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장까지 성공한 것은 안재욱의 힘아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대상은 그가 아니라 '마의'로 드라마에 데뷔한 조승우에게 돌아갔다. 조승우가 수장하는 동안 카메라는 안재욱의 얼굴을 커다랗게 비췄다.
화면속에서 안재욱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트로피를 받아 든 조승우는 수상 소감 중에 '안재욱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Q : 수상을 기대했을텐데, 상을 못받고도 웃은 것은 일종의 연기였나
A : 그날은 솔직히 적잖게 당황했다.  (방송극측에서) 오라고 해서 간 것이고, 당연히 (수상에 대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자리에서 성질을 낼 수도 없지 않나?
      나중에 상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격려를 팬들로부터 받았다.  트로피만 없었지 더 큰 영광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 황태자 루돌프로 다시 돌아온 무대
Q : 데뷔때와 비교해 드라마 제작 문화가 얼마나 바뀌었나..
A : 영화는 촬영기법이며 전반적인 환경이 외국 못지 않게 바뀌었던데, 드라마 제작 현장은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게 없다. 여전히 쪽대본이고, 밤새워 찍어 방송 시간에 겨우 편집해서 보낸다.

Q : 이유가 뭐라고 보나
A :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드라마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시청자가 반드시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주연한 SBS드라마 '사랑해'(2008)가 단적인 예다. 16부작 전체를 사전 제작으로 찍었다. 시청률이 고작 5%였다.
      시청자는 '저 인물이 죽으면 안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의견을 내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
      중간 중간 이야기를 고쳐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해'수준의 시청률이 나온다.

Q : 배우로서 지켜온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A : 나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배우라는 것이다. 나는 순수 예술을 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다.
      교과서는 말한다. '단 한명의 관객이라도 와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공연하라'고.
      말이 안된다. 그럴 때는 그분을 잘 설득해서 돌려보내야 한다. 혼자 않자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관객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뮤지컬을 위해서라도 드라마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몇분이라도 더 공연을 보러 와주시지 않겠나.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내달에 새 음반을 낸다. 인생의 시계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가게 된 이유가 아마도 더 절실하게 연기하고 노래하라는 뜻일테니까...


好想知道這個訪問的翻譯,
真的希望有高人來幫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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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1월 29일..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 .(전문)

안재욱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고 갈 뻔했죠…

삶이 이토록 절실할 줄이야"

데뷔 20년 안재욱… 지난해 美서 쓰러져 대수술 받았던 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로 팬들 곁으로

뇌동맥류 파열, 중환자실 한달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 없는 건 비행기 추락 사고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라고 하더라



죽다 살아나자… 삶은 내 가슴에

남산서 만난 70代 할아버지… '몸 챙기라'며 어깨 두드려줘 다시 무대 오를 힘 얻었죠



복귀작 뮤지컬 '태양왕'은 혹평

그렇게 많은 욕 먹어보긴 처음… '보면 시간낭비'라고들 하대요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죠… 욕먹은 만큼 성숙해진 것 같아요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로비에선 요즘 전에 없이 중국어가 자주 들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공연 사진이 걸린 포토존에서는 젊은 중국 여성들이

한 배우의 사진 앞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끌어안을 듯 붙잡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진의 주인공은 배우 안재욱(43)이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뇌동맥류가 파열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던 그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루돌프'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다.



"확실히 연기가 더 깊어졌다"는 평을 받는 그를 지난 22일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국 여행 중에 갑자기 아팠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중한 상황이었다는데




지난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던 안재욱은 병마(病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혹평을 받은 출연작에 대한 비판에서는 관록 있는 배우의 여유와

솔직함이 엿보였다. 다음 달 새 음반을 낸다는 그는“예전보다 절실해지고 따뜻해진

안재욱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 이덕훈 기자



"속이 체한 듯 불편해서 헛구역질을 하다 극심한 두통에 정신을 잃었다. 아마 그때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인의 집에서 지내던 중이라 바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5시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누워 있었다. 지금은 건강하다.

담당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경우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로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하더라."



―수술 직후 눈을 떴던 순간을 기억하나.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깨어나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뜨니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 뜨지 않았다."



―분노를 어떻게 이겼나?


"다시 삶이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했다. 눈 뜨면 별생각 없이 일어나

스케줄대로 살아가던 삶이었는데, 이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건지, 큰 수수께끼다.

쓸데없이 고집 부리고 잘난 척하던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고비를 넘기고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던 세상은 각박하고 냉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병을 털고 나와보니 모든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절실해지니 따뜻해졌다.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툴렀는데, 고마울

때마다 꼭 표현하고, 속상하면 쌓이기 전에 먼저 다가가서 풀어버린다.

그날 이후 제게 주어진 시간은 미리 열어본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같다.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일들이 와르르 쏟아져서 내 앞에 놓여 있다.

그때 끝나버렸다면 못 이뤘을 게 얼마나 많았겠나.

꿈꾸던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못 따고. 결혼도 못 하고, 애도 못 낳고….

하나씩 풀어봐야 할 트리 옆 선물이 한꺼번에 '날 좀 봐달라'고 하니 기쁘고 감사하긴 한데 다 해낼 수 있을지…."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수술받고 한 달 만에 귀국한 후에는 집에만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하루는 운동 삼아 남산을 걷다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안재욱 아니냐? 미국에서 다쳤다며? 어때?'라며 인사를 건네시더니 주위 친구

분들을 불러 모으셨다. 다들 '기사 봤다' '몸 챙기라'며 자식을 대하듯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예전에 받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떠올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나가보자는 용기를 냈다."



그는 아프고 나서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인은 복귀작이던 프랑스 라이선스 뮤지컬 '태양왕'이었다.

지난 4월 개막한 태양왕은 공연 관계자들끼리도 "보러 가면 시간 낭비"라며 만류할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세월호 여파도 겹쳐 관객 대신 찬 바람이 객석을 메운 날도 많았다.



―복귀작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을텐데.


"태어나 그렇게 많은 욕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쓰러지기 전에 계약해놓은 작품이었는데,

첫 공연하던 날은 틀린 답을 써낸 줄 알면서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 심정이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매일 천근만근이었다. 우선은 내 탓이다.

루이 14세를 다룬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정도만 알고 승낙했다. 작품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골랐어야 했다."



―실망이 컸을 텐데 어떻게 버텼나.


"우연히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 양창순씨가 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였다.

'누군가 단점을 지적하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장점을 말해주면 그들과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일방적인 비난만 하면 그들의 세계라고 치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혹평임에도 보러 와주신 관객에게 죄송하고

짠한 마음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에게 무대 인사할 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만큼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안재욱(오른쪽)이 출연 중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별은 내 가슴에'로 한류 스타 등극

올해 그는 데뷔 20년을 맞았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다니던 안재욱의 목표는 '최불암'이었다.

최불암처럼, 이름 석 자만 대면 모두가 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리라던 꿈은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지 3년 만인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 출연하며 단숨에 이뤄졌다.

드라마는 중국으로 수출되며 초창기 한류 열풍을 주도했다. 그를 보려고 베이징과 대만

등 해외 콘서트장에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2000년 삼성전자가 안재욱을 중국 현지 CF 모델로

내세운 이후 모니터 판매량이 전년도의 2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스타가 됐으니 인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겠다.


"'별은 내 가슴에' 수준의 인기를 계속 누리려고 매달렸으면 공황장애가 왔을 것이다.

단시간에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에 유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스타라고 의식하면 망가지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대중 속에 섞여 살았다.

재래시장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온 동네를 헤집으며 운동하고 다녔다.

다행히 제 얼굴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별은 내 가슴에' 이후 안재욱은 내리막이 아니냐고 하는데.


"시청률로만 보면 '별'보다 높은 드라마도 있다. 그래도 대중은 '별'만 기억한다.

대놓고 ''별은 내 가슴에'에 나올 땐 인기 많으셨죠'라고 인사하신 분도 있었다.

물론 듣기 싫다. 하지만 그게 대중이다. TV에 가장 자주 나오는 사람이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안 나오면 바로 잊어버리고."



안재욱은 2012 년 MBC 연기대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됐다.

64 부작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장까지 성공한 것은

안재욱의 힘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대상은 그가 아니라 '마의'로 드라마에

데뷔한 조승우에게 돌아갔다. 조승우가 수상하는 동안 카메라는 안재욱의 얼굴을

커다랗게 비췄다. 화면 속에서 안재욱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트로피를 받아든 조승우는 수상 소감 중에 "안재욱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수상을 기대했을 텐데, 상을 못 받고도 웃은 것은 일종의 연기였나.


"그날은 솔직히 적잖게 당황했다. (방송국 측에서) 오라고 해서 간 것이고,

당연히 (수상에 대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성질을 낼 수도 없지 않나?

허탈해서 웃고 말았다. 나중에 상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격려를 팬들로부터 받았다.

트로피만 없었지 더 큰 영광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황태자 루돌프로 다시 돌아온 무대


―데뷔 때와 비교해 드라마 제작 문화가 얼마나 바뀌었나.


"영화는 촬영 기법이며 전반적인 환경이 외국 못지않게 바뀌었던데, 드라마 제작 현장은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쪽대본이고, 밤새워 찍어 방송 시간에 겨우 맞춰

편집해서 보낸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드라마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시청자가 반드시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주연한 SBS 드라마 '사랑해'(2008)가 단적인 예다. 16부작 전체를

사전 제작으로 찍었다. 시청률이 고작 5%였다. 시청자는 '저 인물이 죽으면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의견을 내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중간 중간 이야기를 고쳐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해' 수준의 시청률이 나온다."



―배우로서 지켜온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나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배우라는 것이다. 나는 순수 예술을 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다.

교과서는 말한다.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와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공연하라'고. 말이 안 된다.

그럴 때는 그분을 잘 설득해서 돌려보내야 한다. 혼자 앉아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뮤지컬을 위해서라도 드라마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몇 분이라도 더 공연을 보러 와주시지 않겠나."



―앞으로의 계획은.


"내달에 새 음반을 낸다. 인생의 시계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가게 된 이유가 아마도

더 절실하게 연기하고 노래하라는 뜻일 테니까."



신정선|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조선일보 지면버젼 이미지...^^

朝鮮日報 Photo capture

웹상에 나온 사진이랑.. 지면버젼이 사진 느낌이 조금 달라..이것도 올립니다..^^


조금더...길게 보여줬으면 좋았겠습니다만...ㅎㅎㅎ







*이미지 클릭 하시면 더 큰 버젼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요건 오빠님만 크게...^__^


轉貼 "一切就旭", 謝謝茉莉及遠方親們開心分享

今天的報紙刊登了^^
說下個月發新專輯!





原來, 今天的朝鮮日報, 是刊在旭,
將於下月, 即 12 月發行新專輯
轉貼 "築在旭緣", 謝謝 Fly Sep 辛勤翻譯分享

資料來源 : 朝鮮日報

http://premium.chosun.com/site/d ... ml?outlink=facebook

【新聞】2014 年 11 月 29 日朝鮮日報訪問

去年蜘蛛膜下出血倒下的安在旭 明朗健康的模樣看不出一點病魔的痕跡
從對於受到惡評的演出作品的批判之中 看到有氣度的演員的從容與坦率
下個月要出新專輯的他 表示想要讓大家看到比以前更切實更溫暖的安在旭



安在旭"沒能結婚 沒能生小孩 差點走了 沒想到生命是這麼的切實"

首爾新道林 D Cube Center 大廳裡最近常常聽到以前不曾有聽過的中文
掛著音樂劇 "皇太子魯道夫"公演照片的照片區裡
年輕的女性們聚集在一位演員照片前
她們就像擁抱似的緊貼著拍紀念照 照片的主角是安在旭
去年二月在美國因為腦動脈破裂蜘蛛膜下出血昏倒動手術的他
在描寫十九世紀奧地利皇太子悲劇性愛情的"魯道夫"中演出主角
"確實演技更加精進了"他得到這樣評價
二十二日我們在漢南洞的某咖啡店見到了他



在美國旅行時突然發病 聽說是差一點就失去了性命的危急情況

像是消化不良非常不舒服地嘔吐並且頭痛非常劇烈而昏迷
大概是當時血管有問題吧 當時正在朋友家裡 馬上被送上救護車載走
動了五個小時的手術 並在重症病房躺了一個月 現在很健康
主治醫生說 像我這樣完全沒有後遺症的可能性比墜機生還的機率還低



記得手術後睜開眼睛的瞬間嗎?

越過生死的關頭活過來的病患醒過來 知道了發生了甚麼事之後 留下感謝的眼淚?
那樣的事只發生在電影或連續劇裡
手術結束後睜開眼睛後 我很生氣想大喊 我到底是做錯了什麼?
明知道可以睜開眼睛了 但我沒有馬上睜開而是過了一會兒才睜開眼睛



如何戰勝憤怒?

我一直思考 讓我重生的理由是什麼?
以前睜開眼睛後沒特別想什麼就只是照行程走而活到現在的人生  
現在應該有什麼地方不同了吧? 但這是一個大謎團
我發現到自己無用的固執己見,毫無意義的自以為是
慢慢地憤怒就消失無蹤了



越過關頭有甚麼領悟嗎?

我以前所認為的人世間是刻薄又無情的地方
然而病好了之後出來一看感覺所有的事物都很切實 變得切實而溫暖
以前的我比較木訥不懂得怎麼表達
但現在要表達感謝時一定會當場說 而難過時 再積壓之前就會先去解決掉
在那天之後 送給我的時間 就像是提前打開的聖誕禮物的盒子
想做但沒能做到的事 嘩啦啦的全都湧現放置在我的眼前
如果那時一切都結束的話 那麼未能完成的事該有多少啊
夢想的飛行員證照沒有拿到 結婚也沒結到 孩子也沒生到
應該要一個一個拆開來看的 聖誕樹旁的禮物 一下子全都對我說 "看看我 看看我"
很開心也很感謝
但我全部都能完成嗎?



再一次站上舞台不害怕嗎?

手術後一個月回國之後 我就只待在家裡
覺得自己好像不是正常人 我也不自覺的萎靡起來
有一天 就當作運動到南山去走一走 遇到了一位看起來年約七十幾歲的爺爺
"這不是安在旭嗎 在美國受傷了嗎? 現在怎麼樣?" 他跟我打招呼
又叫了旁邊的朋友 大家都圍了過來 就像是對自己孩子似的拍拍我的肩膀
對我說 "有看到新聞" "要好好照顧身體啊"
我想起了以前我所得到過的愛有多麼的溫暖啊
感謝的心讓我有了再出來的勇氣   

他病痊癒了之後戒了他最愛的酒和煙
但是他說"最近因為壓力的關係又開始喝酒"
原因是復出作品法國授權的音樂劇"太陽王"
四月開演的太陽王是 就連公演的同業們都勸人別去看了說"去看也是浪費時間"
受到了這樣的苛刻的批評
又受到了歲月號事件的雙重影響 有很多觀眾席上吹冷風的日子



對於復出作品的熱情應該更不同於他人

從出生到現在被罵得這麼慘這是第一次 這是我病倒前簽約的作品  
演出的第一天 我就是 明知道寫錯答案而正等待著成績單的學生的心情
我以為 我做得到
要往劇場去的腳步 有如千斤萬斤重
首先是我的錯 只知道是演出路易十四的法國音樂劇就答應了
作品應該要徹底地衡量確認後再選擇才對



應該很失望吧?是如何堅持下去的?

很偶然的讀到一本書 精神科醫生楊昌順寫的
"如果有人指出你的缺點就努力修正
如果有人告訴你你的優點 就為了與他們共度的時間而努力
如果只是單方面的責難 就清除他們的世界"
反覆回想這段話 治癒了我的心
儘管評論不佳但還是來看演出的觀眾們
對於他們 我很抱歉且心裡不是滋味的心情 好像都能夠克服了
演出結束後 向觀眾致謝時我說到 "所謂的罵我全都挨了也因此變得成熟了"



以 "星星在我心"登上韓流明星的地位

今年是他出道第二十年 首爾藝大演劇科畢業的安在旭的目標是"崔佛岩"
想成為像像崔佛岩一樣 只要說出名字就無人不知無人不曉的知名演員的夢想
在 MBC 官方採用的三年後1997 年時 出了"星星在我心"一下子實現了
連續劇進軍大陸 主導了初期的韓流熱風
為了見到他 北京和台灣等海外演唱會現場湧入了數萬人
2000 年三星電子啟用安在旭當作中國廣告片模特兒時
電腦螢幕的銷量急增為前一年的兩倍



很早就成名想要維持人氣的壓力很大吧

若是執著於想要一直享受著"星星在我心"般的人氣應該會得恐慌症
因是短時間內就紅起來 若要維持從一開始就不可能
意識到自己是明星時 就會有想要破壞的想法 而積極地混在大眾裡生活
我不會在乎什麼還是一樣會去市場 會在家裡附近走動並運動
所幸我的臉 混在人群之中並不會特別顯眼



有些人說自從 "星星在我心" 之後 安在旭是不是就走下坡了

以收視率來說也有別的連續劇比"星星在我心"更高
然而大眾還是只記得"星"劇 也有人當面跟我說"你在演出星劇時人氣很高啊"
當然我不想聽 但那就是大眾啊
電視最常出現的人就會被認為是最厲害的人
不出現的話馬上就會被忘記

安在旭在 2012 年 MBC 演技大賞中 是被討論最有力的大賞候補人選
64 集的連續劇 "光與影"收視率超過 20% 還延長集數
成功的因素都歸功於安在旭的實力 沒有人對此有異議
但是大賞卻不是給他 是頒給了以馬醫在電視劇中初試啼聲的曹承佑
曹承佑在接受頒獎時  攝影機拍了安在旭的大大的臉部特寫
電視畫面裡安在旭笑容滿面
得到獎座的曹承佑的得獎感言中說了"對安在旭前輩很抱歉"



應該很期待得獎吧? 沒得獎也笑是一種演技嗎?

說實在的那一天很慌亂 因為電視台叫我去所以我當然對於得獎會有所期待
但是在那個場面裡 我也沒辦法發脾氣不是嗎?
我只是因為虛脫而笑了
後來我從 fans 那裏得到了比得獎還要更多的鼓勵
正因為沒得到獎 我才得以享受到比此更大的光榮



以 "皇太子魯道夫" 重回舞台
跟出道時比起來 現在的電視劇製作文化有什麼改變?


電影在攝影技術上整體環境都變得不比外國差
但是電視劇 現在比起以前沒有更好 一樣還是不完整的劇本
趕著播出時間熬夜拍戲趕緊剪接送出



您覺得原因是什麼

是韓國獨特的電視劇文化吧 觀眾一定要參與故事發展才行
我主演的 SBS 電視劇 "我愛你"就是一個活生生的例子
16集都是以事前製作的方式來拍攝 收視劇只有 5%
觀眾們會提出 "那個人不能死" "我們想要這樣 那樣"等等的意見
如果不照他們的意見作 他們就會轉台
中間的劇情都要修改才行 如果不這樣做的話 收視率就會跟 "我愛你" 一樣



身為演員有堅守的原則或哲學嗎?

我是徹底的商業演員 我沒有做純藝術的資格
教科書裡面寫了"就算只有一位觀眾來 也要盡心盡力的演出"
這話說不通 那樣的狀況應該要勸他回去 只有一個人坐著有多麼不自在啊
沒有觀眾的演員是沒有意義的
所以就算是為了音樂劇 我也要演得比電視劇更加賣力
因為就算是多幾個人也好 要來看演出才行啊



今後的計畫?

下個月要出新專輯
人生的時鐘暫時停止又再次走動的理由
應該是因為想要更切實地演戲更切實地歌唱吧
轉貼 "一切就旭", 謝謝楚桐兒開心分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