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인이 있다고 인정하자마자 곧이어 결혼까지 속전속결로 마무리지었다
일할 때도 사랑할 때도 '밀고 당기기'와는 거리가 먼 남자,
안재욱과 허심틴회하게 인터뷰를 나누었다
作者: Christina 時間: 2015-6-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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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zine interview content for Jae Wook
문자 중계
신혼의 안재욱
애인이 있다고 인정하자마자 곧이어 결혼까지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었다.
일할 때도 사랑할 때도 '밀고 당기기'와는 거리가 먼 남자,
안재욱과 허심탄회하게 인터뷰를 나누었다.
지금 방송계에서 인기가 뜨거운 가족 예능. 쿡방 등의 프로그램 못지않게 1990년대에는 '학원 예능'이 인기를 끌었다.
전국의 중.고등학교를 무대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는데, 그중 '1318 힘을 내'는 인기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당시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던 기자는 옆 학교에서 이 방송을 촬영한다는 소문을 듣고 시험도 땡땡이치고 구경을 갔다가 십수 년 인생의 최대 사건을 경험했다.
남의 학교 복도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를 맞닥뜨린 것이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던 그 시각 보도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우연히 잘못 든 길에서 양호실 문을 열고 나오는 남자와 마주쳤다.
바로 안재욱이였다. 아마 양호실을 대기실로 썼던 것 같다.
그 시절,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에서 안재욱이 연기한 '강민'은 지금으로 치면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만큼이나 환상적인 캐릭터였다.
1318 들의 마음도 물론 그의 것이었다. 그 때의 기억 때문에 2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안재욱'하면 기자는 '1318 힘을 내'부터 생각이 난다.
안재욱은 20대 초반 연기자로 데뷔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톱스타로 떠올랐고, 이후로도 부침이나 굴곡 없이 꾸준한 페이스로 롱런해왔다.
그사이 1세대 한류의 주역으로서 일찌감히 아시아권 국가에 진출해 지금껏 활발하게 해외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그러다 3년 전 드라마' 빛과 그림자'로 좋은 성적을 거둔 직후 갑작스럽게 뇌출혈 진단을 받고 큰 수술을 받았다.
일생일대의 고비였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했고, 다시 전처럼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지난 6월 1일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공연에서 만난 배우 최현주와 결혼했다.
그가 밝은 모습으로 신부를 맞이하는 결혼식 장면은 화제를 모았다.
많은 사람들이 최근 2 ~ 3 년간 큰일을 겪은 그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것을 함께 기뻐했다.
반가운 것은 수술 이후 그에게 좋은 일만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는 7월 개막하는 뮤지컬 '아리랑(7월 16일~9월 5일, LG,아트센터)을 연습중인데,
신혼여행도 미룬 채 강행군을 하고 있지만 배우로서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는작품이라며 기대에 찬 모습을 보였다.
Q : 결혼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는데 요즘 기분이 어떤가요
'내가 결혼을 한 게 맞나' 여전히 실감이 안 날 때가 많아요.
Q : 결혼식 풍경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시끌벅적한 이벤트는 안 했어요.
차분하게 치르고 싶어서 특별히 사회자에게 부탁을 했고, 야외에서 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밝고 환한 분위기였어요.
신부와는 많이 웃자고 식전에 얘기를 나눴어요.
"너와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어야 하니까 잘 살겠다는 의미로 최대한 밝은 모습으로 하객들을 맞이하자"고요.
그래서인지 식이 끝난 후 '신랑 신부가 밝아서 좋았다'는 얘기를 다들 하더라고요.
Q :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다들 놀랐죠. 제가 오래 연애를 한 것도 아니고, 연애하는 줄도 몰랐는데 바로 결혼을 한다니까 주위에서는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찰나에 찾아오는 게 결혼이더라고요. 이 친구를 봤을 때 놓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왔어요.
Q : 그래서 어떻게 대시했나요
일단 조사를 좀 해보니 이 친구가 뮤지컬계에서 인기가 굉장히 좋아요.
그런데 뭇 남성의 대시에도 불구하고 썸이 한 번도 없었더라고요.
그래서 잘 걸렸다 싶었죠(웃음).
"너는 날 만나려고 지금껏 기다렸던 거야. 오늘부터 사귀는 거다" 그랬죠.
물론 바로 좋다고 대답하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다음 날 또 고백했어요.
"너는 나랑 사귈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면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게끔 했어요.
Q : 생각했던 결혼 생활이 있었을 텐데요
제가 생각한 결혼은 이런게 아니죠(웃음).
아침에 일어나서 서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저녁에 퇴근하면 차 한잔하면서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이런 걸 생각했는데 현실은 그러기에는 일이 너무 많아요.
일단 신혼집을 꾸미느라 짐 정리할 게 많아요.
짐 옮기고 분리수거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처리하고 공연 연습하러 가면 되게 지쳐요.
하지만 티 낼 수 없으니까 또 열심히 하죠. 그러면 진이 빠져요.
집에 왔을 때 색시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순간은 너무 좋죠. 색시가 또 요리를 잘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가 나가고 없는 시간에 색시 혼자 집에 있게 한 게 미안한 거예요.
그래서 저녁 설거지는 제가 해요. 그러고 나서 기절하는 거죠(웃음).
그래서 연습실 동료들이랑 하는 말이 '신혼생활과 뮤지컬은 상극'이라는 거예요.
Q : 싱글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둘이 돼서 불편하게 여겨지는 것도 있지 않을까요
결혼한 후 제일 불편했던 날은 '아리랑' 팀 첫 회식했던 날이에요.
결혼하고 맞이하는 첫 회식이 그렇게 불편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때 드는 술 한 잔이 정말 무겁게 느껴지더라고, 왜냐하면 아내가 낯선 집에 혼자 있잖아요.
신혼집이 공사중이라 레지던스에 머물고 있어서 더욱 그랬어요.
연습 끝나고 전화해서 오늘 회식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데 1~2초 정도 아내가 맥 풀려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후다닥 건배하고 2시간 만에 집에 들어갔어요.
Q : 총각 시절에 같이 놀던 친구들은 달라진 모습에 서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나서 지금껏 원래 친했던 친구들은 한번도 못 봤어요(웃음)
결혼식 올리고 바로 뮤지컬 연습 들어가느라 시간도 없었고요.
결혼식에 와줘서 고맙다는 통화도 아직 못했어요.
Q : 일도 바쁘고 친구도 많고 취미도 다양한데 가정생활과는 어떻게 조율해나갈 생각인가요
아내가 1순위죠. 이 여자는 이제 내가 없으면 안 되니까.
스무 살 때부터만 따져도 저는 25년간 제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즐기면서 살았어요.
그러느라 지금부터 15년 후면 제 나이가 60이고, 25년 후면 70이에요. 너무 늦게 만난 것 같아 아내에게 미안하죠.
좀 더 일찍 만났으면 더 많이 맛난 것도 먹고 예쁜 것도 보고 그랬을 텐데,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Q : 결혼이 주는 안정감을 실감하나요
저는 굉장히 편해졌어요.
제 얘기만을 들어줄 수 있는 편이 생겼잖아요.
사실 부모, 형제한테도 못하는 이야기가많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오늘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할 수 있고, 마음 놓고 칭얼거릴 대상이 있으니 너무 좋죠.
Q : 아직 신혼여행을 못 갔다고요
뮤지컬 '아리랑' 때문에 미뤘어요.
일단 '아리랑'에 최선을 다하고, 끝나면 바로 신혼여행 가려고요.
어떤 스케불이 생겨도 그 기간은 무조건 비워두기로 했어요.
Q : 뮤지컬 '아리랑' 공연을 앞두고 있죠.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인데, 방대한 스토리를 어떻게 압축했을지 궁금해요.
소설 '아리랑'을 1000만 독자가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어마어마한 작품이죠.
장인어른께서 제가 '아리랑'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곤 소장하고 있던 12권짜리 전집을 보내주셨는데,
결혼 하고 뭐 하고 하면서 정신이 없어서 아직 못 읽어봤어요.
하지만 사실 지금 와서 책을 읽는 것이 별 의미가 없을 정도로 2시간 반짜리 작품 안에 모든 게 다 담겨 있어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파란의 시대를 살아냈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투쟁의 역사를 그리는데, 저는 송수익 역릉 맡았어요.
양반 출신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해 의병을 이끄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인물이죠.
Q : 조정래 작가가 공연 제작 발표회에 참석했는데, 원작자로서 어떤 당부를 하던가요
이번 작퓸울 각색한 고선웅 연풀님이 그날 조정래 선생님과 함께하는 자리를 굉장히 어려워했어요.
원작이 워낙 대작이다 보니 아무래도 부담이 컸겠죠.
그런데 조정래 선생님께서 부담 갖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자신의 작품이 연극, 영화,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개입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하신다면서요.
대신 소설 속 인물 송수익이 만주 벌판에서 고생하는 동포들에게 '당신들 하나하나는 조선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들려주면서
이번 공연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마음가짐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Q :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고선웅 연출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작품에 대해 공유하고 있는 방향이 있다면요
연출님은 일단 모든 배우에게 진실성을 요구해요.
연기하려 하지 마라.
정말 우러나는 만큼만 표현해라.
내 글을 이해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있다면 충분히 건의를 하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절대 배우들이 먼저 슬퍼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슬픔이나 감동은 관객의 몫으로 넘겨야지,
배우가 먼저 울고 힘주어 슬퍼하는 것은 보는 사람들에게 슬픔을 강요하는 일이라며 슬프지만 겉으로 슬프지 않도록 연기해달라는 주문을 했어요.
Q : 배테랑 배우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주문 아닌가요
굉장히 어려워요.
막상 상황과 대사를 알고 연기에 몰입하다 보면 감정이 잡힐 수밖에 없으니까요.
계속해서 감정을 줄여나가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팀 동료들과 연출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이번 작품이 제게는 굉장히 좋은 계기가 되고 있어요.
연기자로서 선배 대접을 받는 위치가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소외 아닌 소외랄까, 그런 걸 느끼거든요.
"재욱씨는 알아서 해주니까" "재욱씨는 잘하니까"라고 하면서 저에게 뭘 더 요구하지 않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 배우로서는 조금 재미가 없다고 할까, 나태라기보다는 뭔가 맥 빠지는 부분이 많이 있었는데,
이번 연출자는 배우에게 과제를 많이 주고 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다시 해보자고 해서 마치 학교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에요.
개인적으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고 있어요.
Q : 캐스팅 이유는 들어보았나요
'아리랑'이라는 작품이 제작된다는 이야기는 전해 듣고 있었어요.
마음속으로 굉장히 다행스러운 일이라고생각했죠.
대한민국의 배우로서 라이선스 작품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는 와중에 국내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대형 창작뮤지컬이 나온다는 사실은 굉장히 반가운 일이죠.
그렇지만 저에게 출연 제안이 온 건 좀 의외였어요(웃음).
나한테 이런 이미지가 있었나 싶기도 했고, 캐스팅 단계에서 기획사가 저에게 한 말은 작품 내외적으로 중심을 좀 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Q : 창작 뮤지컬의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럼요.
관계자들끼리 늘 하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창작극이 안 나오는 이유가 소재가 마땅치 않아서라고 하는데 사실 다 핑게예요.
흥행에 실패하다 보니까 도전하기가 두려워 엄두를 못 내는 거예요.
또 어느 정도는 관객들도 '국내 창작극은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요.
그런 와중에 '아리랑' 같은 좋은 소재와 좋은 대본을 갖춘 작품이 제작된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예요.
배우들끼리도 우리가 열심히 해서 이번 작품을 좋은 선례로 만들자는 각오가 대단하죠.
Q : 연습할 때 분위기는 어때요. 묵직한 작품이라 여느 작품 때와는 또 다를 것 같은데요
연습이라는 게 원래 단계가 있잖아요.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긴장이 풀리고, 분위기가 확 뜨거워지는 순으로 흐르는데,
이번 작품은 처음부터 무슨 전쟁터 나가는 사람들처럼 리딩을 하고 그래서 부담스럽더라고요(웃음).
다들 열심이어서 하루만 게을리해도 뒤처질 수밖에 없는 분위기예요.
제가 결혼식 잔후로 5일 정도 연습을 못 나갔는데, 그사이에 진도를 엄청 나갔더라고요.
다른 작품들 할 때와는 에너지 면에서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Q : 그런데 지금 이시점에 뮤지컬계의 주역으로 살고 있는 건 인생 계획표에 있던 일인가요
그럼요.
원래 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계속 뮤지컬과 연극을 하면서 살았어요.
제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잘 모르죠.
제자 1995년도 이후에는 공연 쪽 일을 안 했기 때문이에요.
당시에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공연계의 병폐들이 너무 싫었어요.
그렇다고 앞장서서 해결해나갈 자신도 없었고요.
그러다가 2000년대에 라이선스 작품들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뮤지컬 인구가 늘었잖아요.
재능 있는 배우도 많이 등장하고, 그 무렵 저는 TV 연기에 회의를 느끼고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뮤지컬 '잭 더 리퍼'의 출연 섭외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복귀를 했는데, '또 연예인이 와서 뮤지컬 하는가 보다'하고 생각하는 관객이 꽤 많은 것 같더라고요.
그런 걸 의식하는 편은 아니라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못 느꼈어요.
Q : 공연이 좋은 이유는 뭔가요
나를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드라마나 영화는 어느 날 힘들거나 아플 때 다른 장치나 도구를 사용해 커버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뮤지컬은 내가 아니면 안 되거든요.
한 회를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 컨디션 조절이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스스로를 방치할 수가 없어요.
Q : 언젠가부터 드라마에 출연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는데 그 이우가 조금 전에 말한 회의감 때문이었나요
회의라기보다는 살면서 최대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은데 뭘 하고 나면 늘 아쉬웠어요.
경력이 쌓이면서 기대치는 높아져 가는데 과연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내 나름대로의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는 길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런 고민을 했던 시간인 것 같아요.
실제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배역의 범위가 전과는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데, 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했고요.
Q : 단순히 '연기가 하기 싫다' '지겹다' 식의 회의가 아니였네요
물론 하기 싫고 지겨울 때도 있지만 그런 문제는 쉽게 극복할 수 있어요.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요.
이 일만큼, 연기만큼 할 줄 아는 뭔가가 있었으면 다른 일을 했을지도 모르죠.
그런 면에서는 재주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요(웃음)
Q : '빛과 그림자' 출연 이후 드라마 활동은 여전히 뜸해요. 꾸준히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것과는 상반되는데 이유가 있나요
어느 쪽이 더 좋고 싫고의 문제는 아니고요.
아파서 1년 쉬고, 복귀해서 2년째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사이에 들어온 일들 중에 재미있는 것을 하려다 보니 뮤지컬을 선택하게 된 거죠.
드라마도 몇 편 들어왔지만 특별히 딩기는 게 없었고요.
저는 분야를 정해놓고 일하진 않아요. 장르가 뭐든 좋은 작품이 들어오면 놓치지 말자는 주의예요.
Q : 작품은 어떻게 고르나요
무조건 제가 재밌어야 해요.
연기하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보는 사람도 재미있을 테니까요.
저는 뭐든 억지로 못하는 성격이예요.
직업이 배우인데도 얼굴 표정을 못 감추죠.
누가 제 드라마가 좋다고 하고 시청률이 높으면 신나지만, 시청률이 안 나오면 밖에도 나가기 싫어요.
제가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요.
Q : 뭘 억지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은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은 듯해요
그건 그냥 성격인 것 같아요.
어렷을 때부터 하기 싫은 일에 대한 저항이 굉장히 심했어요.
싫어도 참고 할 수 있는데, 저는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걸 정말 못해요.
학창 시절에도 듣기 싫은 수업에는 안 들어가서 친구들이 굉장히 멋있다고 했는데,
나중에 등록금 더 낼 때 찢어지는 가슴은 아무도 모르죠(웃음).
Q : 건강은 어떤가요.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긴급 수술을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어요
건강은 좋아요.
뇌출혈은 지병이 아니고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응급 처치와 수술이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운 좋게 수술이 정말 잘된 케이스죠.
Q : 회복하는데 1년 정도 걸렸다고요. 스스로 어떤 노력들을 했나요
보통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재발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두려움 때문에 굉장히 조심한다고 하더라고요.
조금씩 움직여보라고 권유해도 겁이 나서 집 밖에도 안 나가고요.
저는 반대로 스스로를 심각한 환자로 취급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침이고 저녁이고 일부러 나가서 걸었어요.
처음엔 걷는 게 불편하죠. 한달을 병원에 누워 있었으니까요.
수술하고 4주쯤 지났을 때 걸어보고 싶어서 휄체어를 잡고 일어서려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말리더라고요.
그때는 절실했기 때문에 겁이 안 났던 것 같아요.
오히려 지금은 좀 더 조심하게 되고요.
Q : 그때 이후 생활 습관도 많이 달라졌죠
그전에는 술, 담배를 많이 했는데 수술 후 1년 넘게 술, 담배를 전혀 안 했어요.
지금은 조금씩 하긴 하지만 예전과 비교하면 횟수나 양이 훨씬 줄었죠.
제 의지로 절제하는게 아니라 몸이 기억하니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너 아팠잖아''큰 수술 받았잖아' 하고 몸이 말을 해요.
그 정도로 몸이 받은 쇼크가 어마어마했던 거죠.
Q : 사람이 큰 고비를 넘게 되면 그 과정에서 삶의 태도나 방식이 달라진다고도 하잖아요. 이후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소설이나 영화에서처럼 그럴싸한 느낌은 안 들었어요.
완전히 회복되고 나서 오히려 굉장히 날카로워지더라고요.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기에' 같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어요.
그러다가 '나에게 이런 계기를 준 이유가 있을 거야'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더라고요.
거기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삶의 기회를 다시 얻은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전에는 '싫으면 그만' 안 하면 그만' '안 보면 그만' 이런 식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절실함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게 좀 달라졌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양보할 수 있는 것은 양보하고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또 그렇게 하려고 해요.
갑작스럽게 찾아온 위기를 잘 극복하고,
이제 막 한 가정의 가징이 된 그는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삶을 맞이한 듯했다.
앞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 될 거라고 말하는 그의 앞날에 또 어떤 기분 좋은 변화들이 일어날지 기대가 된다.作者: Christina 時間: 2015-7-11 1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