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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4년 11월 29일 조선일보 토일섹션 Why? (B4,B5면)에 실린 "안재욱"기사[수정]
재욱님은 공연이 없는 11월 22일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하셨네요
사진에 나온 재욱님 모습은 루돌프와는 또 다른.. (안경은.. 안경은 인터뷰때는 쓰지 마요..)
안재욱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고 갈 뻔했죠… 삶이 이토록 절실 할 줄이야"
뇌동맥류 파열, 중환자실 한달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 없는 건 비행기 추락 사고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라고 하더라.
죽다 살아나자… 삶은 내 가슴에
남산서 만난 70代 할아버지… '몸 챙기라'며 어깨 두드려줘 다시 무대 오를 힘 얻었죠
복귀작 뮤지컬 '태양왕'은 혹평
그렇게 많은 욕 먹어보긴 처음… '보면 시간낭비'라고들 하대요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죠… 욕먹은 만큼 성숙해진 것 같아요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로비에선 요즘 전에 없이 중국어가 자주 들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공연 사진이 걸린 포토존에서는 젊은 중국 여성들이 한 배우의 사진 앞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끌어안을 듯 붙잡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진의 주인공은 배우 안재욱(43)이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뇌동맥류가 파열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던 그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루돌프'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다.
"확실히 연기가 더 깊어졌다"는 평을 받는 그를 지난 22일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지난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던 안재욱은 병마(病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혹평을 받은 출연작에 대한 비판에서는 관록 있는 배우의 여유와 솔직함이 엿보였다.
다음 달 새 음반을 낸다는 그는“예전보다 절실해지고 따뜻해진 안재욱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 이덕훈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Q : 미국여행중에 갑자기 아팠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중한 상황이었다는데..
A : 속이 체한듯 불편해서 헛구역질을 하다 극심한 두통에 정신을 잃었다. 아마 그때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인의 집에서 지내던 중이라 바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5시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한달을 누워 있었다. 지금은 건강하다.
담당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경우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로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하더라.
Q : 수술 직후 눈을 떴던 순간을 기억하나?..
A :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깨어나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뜨니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 뜨지 않았다.
Q : 분노를 어떻게 이겼나?...
A : 다시 삶이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했다. 눈뜨면 별생각없이 일어나 스케줄대로 살아가던 삶이었는데, 이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건지, 큰 수수께기다
쓸데없이 고집 부리고 잘난척하던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Q : 고비를 넘기고 깨달은 점이 있다면....
A : 내가 생각하던 세상은 각박하고 냉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병을 털고 나와보니 모든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절실해지니 따뜻해졌다.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툴렀는데, 고마울때마도 꼭 표현하고, 속상하면 쌓이기전에 먼저 다가가서 풀어버린다. 그날 이후 제게 주어진 시간은 미리 열어 본 크리스마스 선물상자 같다.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일들이 와르르 쏟아져서 내 앞에 놓여 있다. 그때 끝나버렸다면 못 이뤘을게 얼마나 많았겠나.
꿈꾸던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못따고,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고... 하나씩 풀어봐야 할 트리 옆 선물이 한꺼번에 '날 좀 봐달라'고 하니 기쁘고 감사하긴 한데 다 해 낼수 있을지...
Q :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A : 수술받고 한달만에 귀국한 후에는 집에만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하루는 운동삼아 남산을 걷다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다.
"안재욱 아니냐? 미국에서 다쳤다며? 어때?라고 인사를 건네시더니 주위 친구분들을 불러 모으셨다.
다들 '기사봤다', '몸 챙기라'며 자식을 대하듯 어깨를 두드려 주셨다.
예전에 받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떠올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나가보자는 용기를 냈다.
그는 아프고 나서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인인 복귀작이던 프랑스 라이선스 뮤지컬 '태양왕' 이었다.
지난 4월 개막한 태양왕은 공연관계자들끼리도 "보러 가면 시간낭비"라며 만류할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세월호 여파도 겹쳐 관객대신 찬바람이 객석을 채운 날도 많았다.
Q : 복귀작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을텐데...
A : 태어나 그렇게 많은 욕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첫 공연하던 날은 틀린 답을 써낸 줄 알면서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 심정이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매일 천근만근이었다. 우선은 내 탓이다. 루이 14세를 다룬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정도만 알고 승낙했다. 작품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골랐어야 했다.
Q : 실망이 컸을텐데 어떻게 버텼나...
A : 우연히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 양창순씨가 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였다. '누군가 단점을 지적하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장점을 말해주면 그들과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일방적인 비난만 하면 그들의 세계라고 치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혹평임에도 보러 와주신 관객에게 죄송하고 짠한 마음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에게 무대 인사할 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만큼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안재욱(오른쪽)이 출연 중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 '별은 내 가슴에'로 한류스타 등극
올해 데뷔 20년을 맞았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다니던 안재욱의 목표는 '최불암'이었다.
최불암처럼, 이름 석자만 대ㅔ면 모두가 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리라던 꿈은 MBC공채 탤런트로 데뷔한지 3년만인 1996년 '별은 내가슴에'에 출연하며 단숨에 이뤄졌다.
드라마는 중국으로 수출되며 초창기 한류 열풍을 주도했다. 그를 보려고 베이징과 대만 등 해외 콘서트장에 수만명이 몰려들었다.
2000년 삼성전자가 안재욱을 중국 현지 CF모델로 내세운 이후 모니터 판매량이 전년도의 2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Q : 일찌감치 스타가 됐으니 인기를 유지했야한다는 스트레스가 컸겠다.
A : '별은 내가슴에' 수준의 인기를 계속 누리려고 매달렸으면 공황장애가 왔을 것이다. 단시간에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에 유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스타라고 의식하면 망가지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대중속에 섞여 살았다. 재래시장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온 동네를 헤집으며 운동하고 다녔다.
다행히 제 얼굴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Q : 일부에서는 '별은 내가슴에'이후 안재욱은 내리막이 아니냐고 하는데...
A : 시청률로만 보면 '별'보다 높은 드라마도 있다. 그래도 대중은 '별'만 기억한다. 대놓고 '별은 내가슴에'에 나올 땐 인기 많으셨죠라고 인사하신 분도 있었다.
물론 듣기 싫다. 하지만 그게 대중이다. TV에 가장 자주 나오는 사람이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안나오면 바로 잊어버리고
안재욱은 2012년 MBC연기대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됐다.
64부작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장까지 성공한 것은 안재욱의 힘아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대상은 그가 아니라 '마의'로 드라마에 데뷔한 조승우에게 돌아갔다. 조승우가 수장하는 동안 카메라는 안재욱의 얼굴을 커다랗게 비췄다.
화면속에서 안재욱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트로피를 받아 든 조승우는 수상 소감 중에 '안재욱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Q : 수상을 기대했을텐데, 상을 못받고도 웃은 것은 일종의 연기였나
A : 그날은 솔직히 적잖게 당황했다. (방송극측에서) 오라고 해서 간 것이고, 당연히 (수상에 대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자리에서 성질을 낼 수도 없지 않나?
나중에 상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격려를 팬들로부터 받았다. 트로피만 없었지 더 큰 영광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 황태자 루돌프로 다시 돌아온 무대
Q : 데뷔때와 비교해 드라마 제작 문화가 얼마나 바뀌었나..
A : 영화는 촬영기법이며 전반적인 환경이 외국 못지 않게 바뀌었던데, 드라마 제작 현장은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게 없다. 여전히 쪽대본이고, 밤새워 찍어 방송 시간에 겨우 편집해서 보낸다.
Q : 이유가 뭐라고 보나
A :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드라마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시청자가 반드시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주연한 SBS드라마 '사랑해'(2008)가 단적인 예다. 16부작 전체를 사전 제작으로 찍었다. 시청률이 고작 5%였다.
시청자는 '저 인물이 죽으면 안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의견을 내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채널을 돌려 버린다.
중간 중간 이야기를 고쳐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해'수준의 시청률이 나온다.
Q : 배우로서 지켜온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A : 나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배우라는 것이다. 나는 순수 예술을 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다.
교과서는 말한다. '단 한명의 관객이라도 와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공연하라'고.
말이 안된다. 그럴 때는 그분을 잘 설득해서 돌려보내야 한다. 혼자 않자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관객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뮤지컬을 위해서라도 드라마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몇분이라도 더 공연을 보러 와주시지 않겠나.
Q : 앞으로의 계획은?
A : 내달에 새 음반을 낸다. 인생의 시계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가게 된 이유가 아마도 더 절실하게 연기하고 노래하라는 뜻일테니까...
作者: Christina 時間: 2014-11-29 14:04
好想知道這個訪問的翻譯,
真的希望有高人來幫忙作者: Christina 時間: 2014-11-29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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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11월 29일..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 .(전문)
안재욱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고 갈 뻔했죠…
삶이 이토록 절실할 줄이야"
데뷔 20년 안재욱… 지난해 美서 쓰러져 대수술 받았던 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로 팬들 곁으로
뇌동맥류 파열, 중환자실 한달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 없는 건 비행기 추락 사고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라고 하더라
죽다 살아나자… 삶은 내 가슴에
남산서 만난 70代 할아버지… '몸 챙기라'며 어깨 두드려줘 다시 무대 오를 힘 얻었죠
복귀작 뮤지컬 '태양왕'은 혹평
그렇게 많은 욕 먹어보긴 처음… '보면 시간낭비'라고들 하대요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죠… 욕먹은 만큼 성숙해진 것 같아요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로비에선 요즘 전에 없이 중국어가 자주 들린다.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공연 사진이 걸린 포토존에서는 젊은 중국 여성들이
한 배우의 사진 앞으로 모여든다. 그들이 끌어안을 듯 붙잡고 기념사진을 찍는
사진의 주인공은 배우 안재욱(43)이다. 지난해 2월 미국에서 뇌동맥류가 파열된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져 대수술을 받았던 그는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루돌프'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선다.
"확실히 연기가 더 깊어졌다"는 평을 받는 그를 지난 22일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국 여행 중에 갑자기 아팠나.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중한 상황이었다는데
지난해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던 안재욱은 병마(病魔)의 자취를 찾아볼 수 없는 밝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혹평을 받은 출연작에 대한 비판에서는 관록 있는 배우의 여유와
솔직함이 엿보였다. 다음 달 새 음반을 낸다는 그는“예전보다 절실해지고 따뜻해진
안재욱을 보여 드리고 싶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 이덕훈 기자
"속이 체한 듯 불편해서 헛구역질을 하다 극심한 두통에 정신을 잃었다. 아마 그때
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지인의 집에서 지내던 중이라 바로 구급차에 실려갔다.
5시간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누워 있었다. 지금은 건강하다.
담당 의사가 저처럼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경우는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하고도 살아남을
확률 정도로 가능성이 낮은 일이라고 하더라."
―수술 직후 눈을 떴던 순간을 기억하나.
"죽을 고비를 넘긴 환자가 깨어나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 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뜨니 화가 났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눈을 뜰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동안 뜨지 않았다."
―분노를 어떻게 이겼나?
"다시 삶이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했다. 눈 뜨면 별생각 없이 일어나
스케줄대로 살아가던 삶이었는데, 이젠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 건지, 큰 수수께끼다.
쓸데없이 고집 부리고 잘난 척하던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졌다."
―고비를 넘기고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내가 생각하던 세상은 각박하고 냉정한 곳이었다. 그런데 병을 털고 나와보니 모든 게
절실하게 느껴졌다. 절실해지니 따뜻해졌다. 무뚝뚝하고 표현에 서툴렀는데, 고마울
때마다 꼭 표현하고, 속상하면 쌓이기 전에 먼저 다가가서 풀어버린다.
그날 이후 제게 주어진 시간은 미리 열어본 크리스마스 선물 상자 같다.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일들이 와르르 쏟아져서 내 앞에 놓여 있다.
그때 끝나버렸다면 못 이뤘을 게 얼마나 많았겠나.
꿈꾸던 비행기 조종사 자격증도 못 따고. 결혼도 못 하고, 애도 못 낳고….
하나씩 풀어봐야 할 트리 옆 선물이 한꺼번에 '날 좀 봐달라'고 하니 기쁘고 감사하긴 한데 다 해낼 수 있을지…."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렵지는 않았나.
"수술받고 한 달 만에 귀국한 후에는 집에만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하루는 운동 삼아 남산을 걷다가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났다. '안재욱 아니냐? 미국에서 다쳤다며? 어때?'라며 인사를 건네시더니 주위 친구
분들을 불러 모으셨다. 다들 '기사 봤다' '몸 챙기라'며 자식을 대하듯 어깨를 두드려주셨다.
예전에 받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떠올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나가보자는 용기를 냈다."
그는 아프고 나서 즐기던 술과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다시
시작했다"고 말했다. 원인은 복귀작이던 프랑스 라이선스 뮤지컬 '태양왕'이었다.
지난 4월 개막한 태양왕은 공연 관계자들끼리도 "보러 가면 시간 낭비"라며 만류할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세월호 여파도 겹쳐 관객 대신 찬 바람이 객석을 메운 날도 많았다.
―복귀작에 대한 의욕이 남달랐을텐데.
"태어나 그렇게 많은 욕을 먹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쓰러지기 전에 계약해놓은 작품이었는데,
첫 공연하던 날은 틀린 답을 써낸 줄 알면서 성적표를 기다리는 학생 심정이었다.
미치는 줄 알았다.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매일 천근만근이었다. 우선은 내 탓이다.
루이 14세를 다룬 프랑스 뮤지컬이라는 정도만 알고 승낙했다. 작품을 철저하게 따져보고 골랐어야 했다."
―실망이 컸을 텐데 어떻게 버텼나.
"우연히 책을 읽었다. 정신과 의사 양창순씨가 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였다.
'누군가 단점을 지적하면 고치려고 노력하고, 장점을 말해주면 그들과 시간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일방적인 비난만 하면 그들의 세계라고 치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구절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스렸다. 혹평임에도 보러 와주신 관객에게 죄송하고
짠한 마음에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에게 무대 인사할 때
'욕이란 욕은 다 먹고, 그만큼 성숙해진 것 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안재욱(오른쪽)이 출연 중인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
◇'별은 내 가슴에'로 한류 스타 등극
올해 그는 데뷔 20년을 맞았다. 서울예대 연극과에 다니던 안재욱의 목표는 '최불암'이었다.
최불암처럼, 이름 석 자만 대면 모두가 아는 유명한 배우가 되리라던 꿈은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지 3년 만인 1997년 '별은 내 가슴에'에 출연하며 단숨에 이뤄졌다.
드라마는 중국으로 수출되며 초창기 한류 열풍을 주도했다. 그를 보려고 베이징과 대만
등 해외 콘서트장에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2000년 삼성전자가 안재욱을 중국 현지 CF 모델로
내세운 이후 모니터 판매량이 전년도의 2배로 급증하기도 했다.
―일찌감치 스타가 됐으니 인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컸겠다.
"'별은 내 가슴에' 수준의 인기를 계속 누리려고 매달렸으면 공황장애가 왔을 것이다.
단시간에 엄청나게 올라갔기 때문에 유지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스타라고 의식하면 망가지겠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대중 속에 섞여 살았다.
재래시장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고 온 동네를 헤집으며 운동하고 다녔다.
다행히 제 얼굴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
―일부에서는 '별은 내 가슴에' 이후 안재욱은 내리막이 아니냐고 하는데.
"시청률로만 보면 '별'보다 높은 드라마도 있다. 그래도 대중은 '별'만 기억한다.
대놓고 ''별은 내 가슴에'에 나올 땐 인기 많으셨죠'라고 인사하신 분도 있었다.
물론 듣기 싫다. 하지만 그게 대중이다. TV에 가장 자주 나오는 사람이 제일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안 나오면 바로 잊어버리고."
안재욱은 2012 년 MBC 연기대상에서 가장 강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됐다.
64 부작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2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연장까지 성공한 것은
안재욱의 힘이라는 데에 이견이 없었다. 하지만 대상은 그가 아니라 '마의'로 드라마에
데뷔한 조승우에게 돌아갔다. 조승우가 수상하는 동안 카메라는 안재욱의 얼굴을
커다랗게 비췄다. 화면 속에서 안재욱은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트로피를 받아든 조승우는 수상 소감 중에 "안재욱 선배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수상을 기대했을 텐데, 상을 못 받고도 웃은 것은 일종의 연기였나.
"그날은 솔직히 적잖게 당황했다. (방송국 측에서) 오라고 해서 간 것이고,
당연히 (수상에 대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성질을 낼 수도 없지 않나?
허탈해서 웃고 말았다. 나중에 상 받았을 때보다 더 많은 격려를 팬들로부터 받았다.
트로피만 없었지 더 큰 영광을 누렸다고 생각한다."
◇황태자 루돌프로 다시 돌아온 무대
―데뷔 때와 비교해 드라마 제작 문화가 얼마나 바뀌었나.
"영화는 촬영 기법이며 전반적인 환경이 외국 못지않게 바뀌었던데, 드라마 제작 현장은
예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 여전히 쪽대본이고, 밤새워 찍어 방송 시간에 겨우 맞춰
편집해서 보낸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드라마 문화가 있는 것 같다. 시청자가 반드시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주연한 SBS 드라마 '사랑해'(2008)가 단적인 예다. 16부작 전체를
사전 제작으로 찍었다. 시청률이 고작 5%였다. 시청자는 '저 인물이 죽으면 안 된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의견을 내고, 그에 따르지 않으면 채널을
돌려버린다. 중간 중간 이야기를 고쳐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해' 수준의 시청률이 나온다."
―배우로서 지켜온 원칙이나 철학이 있다면.
"나는 철저하게 상업적인 배우라는 것이다. 나는 순수 예술을 할 자격도 없고 능력도 없다.
교과서는 말한다. '단 한 명의 관객이라도 와준다면 최선을 다해서 공연하라'고. 말이 안 된다.
그럴 때는 그분을 잘 설득해서 돌려보내야 한다. 혼자 앉아 있으면 얼마나 민망하겠나.
관객 없는 배우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뮤지컬을 위해서라도 드라마를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